매일신문

"고향 생각, 담백하게 달랜다"…새터민이 맛본 남한 냉면 맛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만든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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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유혜림, 양정희, 염은혜 씨가 냉면을 먹기 위해 면을 비비고 있다.

냉면은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고향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남한에서 자리를 잡으며 대중화되었다. 당장 먹고살 길이 없는 실향민들이 고향에서 해먹던 방법대로 냉면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랜 역사를 지닌 냉면 전문점에 가면 단골손님 중에 어르신들이 많고 종종 평소 듣기 쉽지 않은 북한 사투리가 유독 크게 많이 들리기도 한다. 몇 년 전 북한을 탈출한 유혜림(가명·60), 양정희(가명·59), 염은혜(가명·56) 씨는 "가끔 고향 생각이 나면 모여 냉면을 해먹곤 한다"고 했다. 이들과 함께 대구 냉면집을 둘러봤다.

물냉면(왼쪽)와 비빔냉면
새터민 유혜림, 양정희, 염은혜 씨가 냉면을 먹기 위해 면을 비비고 있다.

"가끔 고향 생각이 나면 모여 냉면을 해먹곤 한다"는 새터민 유혜림, 양정희, 염은혜 씨가 남한 냉면을 맛보고 있다. 박노익 기자 noik@imaeil.com

◆북한 사람, 깊고 담백한 맛 즐겨

유혜림 씨와 양정희, 염은혜 씨는 북한냉면과 남한냉면 중 어느 게 더 맛있느냐고 묻는 건 의미가 없고, 사람마다 선호하는 냉면이 다르니 비교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이구동성으로 "남한 냉면은 육수 향이 과하고, 너무 달고 신맛이 강하다"고 했다. "북한 사람들은 한 번에 느껴지는 자극적인 맛보다 담백하면서 질리지 않는 맛을 선호한다"고 했다. 북한에서도 북쪽 지역에서 태어난 이들은 주로 감자 전분을 반죽해 면발을 뽑은 농마(녹말의 북한 사투리)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양강도 백두산 밑 혜산이 고향인 은혜 씨는 "고향을 떠나니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음식이다. 그래서 가끔 집에서도 그쪽에서 먹었던 냉면을 해먹는다"고 했다. 은혜 씨는 감자로 전분가루를 내 면을 만들고, 육수는 고기가 귀해 호박씨를 볶아 육수를 만들어 말아 먹거나 양념에 비벼먹었다고 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유리알처럼 흰 면발은 질기지만 고소하고 육수는 담백한 맛이 난다"고 했다.

정희 씨의 고향은 함경북도 선봉. "바닷가라 생선을 구하기 쉬웠다. 겨울에는 꿩으로 육수를 만들고 여름에는 털게 살을 말려서 고명으로 얹어 먹었다"고 했다. 비빔냉면에 들어가는 명태회는 식초와 소금으로 씻어 남한보다 더 꼬들꼬들한 맛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정희 씨는 "메밀도 구하기 힘들어 손님이 올 때나 특별한 날(설날, 2월16일 김정일 생일, 4월 15일 김일성 생일 날)에 냉면을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양강도 후창이 고향인 혜림 씨는 "압록강을 접하고 있어 벼농사를 주로 했는데, 설날이나 생일, 결혼식 때 메일이나 감자를 구해 냉면을 만들어 닭고기 육수에 말아 계란이나 오이 등 고명을 얹어 먹었다. 북한에서도 지역마다 특산물이 달라 어떤 지역은 메밀, 어떤 지역은 감자 등을 이용해 냉면을 만들었다"고 했다. 혜림 씨는 "북한에서는 설날이나 생일, 결혼식 때 면을 꼭 먹는다. 면처럼 길게 오래 살라는 의미다. 이 같은 속설 탓인지 면을 잘라 먹는 풍습이 없다. 가위를 왜 대는지 모르겠다"며 북한 출신으로서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혜림 씨는 남한의 냉면이 북한 냉면과 다른 이유에 대해 "분단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북에서는 북의 방식대로, 남에서는 남의 방식으로 요리법이 진화했다. 사람 입맛이라는 게 지역뿐 아니라 시대별로도 다르다"고 분석했다.

물냉면(왼쪽)와 비빔냉면

◆남한 냉면 맛은?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에 있는 한 냉면집. 반세기가 넘도록 이북식 원조 냉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 중 하나다. 인삼을 넣어 육수를 낸 슴슴한 국물맛이 특징인데, 가게 입구에 들어서면 육수 우려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비빔냉면도 좋지만 슴슴한 국물맛의 물냉면이 더 유명한 곳이다.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밋밋함만 느껴지겠지만 한 번, 두 번 접하다 보면 특유의 깊고 시원한 맛에 푹 빠진다.

물냉면을 맛본 은혜 씨는 "육수 향이 다소 강해 입맛이 맞지 않지만 면은 북한 면처럼 가늘어 먹기 좋고 맛도 괜찮다"며 "북한의 냉면을 살리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혜림 씨 역시 "몇 군데 다녀본 것 중에 이 집 냉면이 내 입맛에 맞다"고 맞장구쳤다.

대구 중구에 있는 또 다른 냉면집. 제철을 맞아 손님이 가게 밖까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맛집이다. 이 같은 유명세는 바로 특별한 방법으로 만드는 냉면 육수 때문이다. 보통 생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는 냉면집들과 달리 이곳은 숙성 과정을 거친 고기로 육수를 낸다. 도토리묵과 깻잎 순, 건도라지를 이용해 죽을 만들어 고기를 숙성해주면 특유의 잡냄새는 사라지고 담백함과 풍미가 극대화된다는 것이 주인의 설명이다.

물냉면의 육수는 평양냉면 특유의 싱거운 느낌이 나지만 여기에 맛을 들이면 일반 고깃집 냉면은 쳐다보지도 않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가오리포가 고명으로 올라가 있는 비빔냉면은 매콤·새콤·달콤하다.

은혜 씨는 "육수의 고기향이 너무 강하다. 물냉면 면은 너무 굵고 툭툭 잘 끊어져 씹는 맛이 없다. 비빔면 역시 새콤·달콤한 양념 맛이 강해 냉면 본연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혜림 씨는 "육수 맛은 고기 맛과 향뿐"이라고 했고, 정희 씨는 "면은 메밀 특유의 구수한 맛이 없고, 비빔면은 고추장 맛이 강해 냉면 본연의 맛을 반감시킨다"고 평했다.

또 한곳의 냉면집. 이곳 물냉면 육수는 사골을 달여낸 진한 맛에 식초를 넉넉하게 넣어 새콤달콤한 것이 특징이다. 이곳의 온육수는 기름기가 적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다른 냉면집에 없는 '김치마리냉면'. 새콤하면서 산뜻한 맛의 김치마리냉면은 냉면에다 깍두기 김칫국물을 붓고 여기다 밥 한 덩이를 말아낸 것이다. 산뜻한 맛이 목젓을 타면서 내려가니 시원하면서 담백한 맛에 당기는 맛까지 더해져서인지 먹는 내내 감칠맛이 샘솟는 듯한 냉면이다.

혜림씨는 "고기 향과 맛이 덜해 김치마리냉면이 괜찮은 것 같다. 다른 면에 비해 잘 넘어간다"고 했다. 은혜 씨는 "물냉면은 메밀에 고구마 전분을 섞은 것 같다. 면발은 괜찮은 것 같다. 다만 신맛, 단맛의 강도는 손님이 결정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정희 씨는 "50대 중후반인 우리는 북한에서 자라 그곳 입맛을 가지고 있어 남한 냉면을 평가하는 것이 옳아 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탈북자 젊은친구들이 남한 냉면을 맛 보면 우리와 달리 다른 반응 나올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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