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등학교 12년을 통하여 고맙게 생각하지 않은 스승이 없지만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스승은 중학교 시절 도덕을 가르치셨던 박중근 선생님이다. 180㎝가 넘는 거대한 키나 엄청난 유도 고단자(아마도 9단?)라서가 아니라 수업시간 내내 항일 정신만 가르쳐주셨다. 수업은 항상 공포감과 긴장감의 연속이었고 때로는 무자비하기도 했지만 뼈에 사무쳐 계시던 선생님의 항일정신은 반백년이 지난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 선생님 덕분에 평생 일본에 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일본 상품을 사지 않으려고 했으며 또 입으로는 절대로 일본 사람이 아니라 왜놈이라고 부르는 습관을 가졌다.
지난 7월 1일 일본은 마치 진주만 공격처럼 중요한 제품의 한국 수출을 막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나 국회는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양국 당국자 간의 실질적 협상 없이 감정을 부추기는 불매운동만 격화되고 있다.
우리와 일본과의 교역 구조에는 숨길 수 없는 현실이 있다.
첫째는 심각한 무역역조다. 지난 60여 년 동안 우리는 단 한 해도 무역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었고 2004년부터 지금까지 무역 적자가 200억달러보다 적은 적이 한 해도 없었다. 따라서 저쪽에서 안 팔겠다고 한다면 우리도 안 팔겠다고 대항하기엔 역부족이다.
두 번째 현실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대부분의 상품이 중간재(349억8천달러)와 자본재(138억4천달러)다. 이 둘을 합하면 488억달러로 전체 수입의 90%에 달한다. 기계, 화학원료, 금속제품들로 대체가 쉽지 않은 상품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제품을 조금이라도 제때에 한국이 수입하지 않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못하거나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어려움이 생긴다.
셋째 대일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품목은 농축수산물, 가공식품, 섬유 및 의복인데 이 부문은 수출이 수입 규모보다 커서 일본의 불매운동 맞대응에 취약하다. 예컨대 담배의 경우 우리의 대일 수입은 400만달러인데 대일 수출은 3억달러로 10배 가깝고, 의류의 경우에도 우리의 대일 수입은 4천만달러인데 대일 수출은 8천만달러로 2배나 된다. 화장품도 대일 수입은 3억800만달러인데 대일 수출은 3억2천만달러다. 그러니 만약 우리의 불매운동이 부메랑을 일으킨다면 경제적 피해는 작지 않을 것이다.
한일 교역에서 우리가 '보복'할 수 있는 전략은 이론적으로 4가지가 있다: ①한국산 기계나 원료의 대일본 수출규제 ②국산 농축수산물 등의 대일본 수출규제 ③일본산 기계나 원료의 불매운동 ④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그것이다.
①항이나 ②항 같은 대일본 수출규제는 한국 기업이나 농어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채택하기 어렵다. ③항은 당장 우리 공장 가동이나 산업의 마비가 우려되므로 어렵다. 결국 남는 것은 ④항밖에 없는데 이 또한 일본이 불매운동으로 반격해온다면 타격이 클 것이다. 결국 일본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가 된 근본 이유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다. 기술력과 정신력에서 일본을 이기지 못했다. 기술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고 일본 상품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했다. 저들의 부품이나 소재를 사들이면서 기술적 종속을 탈피할 생각을 못했다. 저들의 기술력을 가볍게 생각했다.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23명이나 되는 사실을 애써 외면해왔다. 저들은 우리 자동차나 TV를 사지 않는데도 우리는 그들의 물품을 헤프게 사주었다. K-POP이 모든 것인 양 일본 축구만 이기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양 나태해져 있었다.
이젠 바꾸어야 한다. 우리 제품이 없으면 저들 경제가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저들이 우리 제품을 사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우리가 저들로부터 살 물건이 별로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 첫 단추는 반일(反日)정신이 아니라 극일(克日)정신이다. 중학교 은사인 박중근 선생님을 생각하며 내가 극일의 내 몫을 다하지 못한 것을 정말 뼈아프게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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