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 황교안 대표의 희생

박상전 서울정경부 차장
박상전 서울정경부 차장

김태호 전 경남지사의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출마가 확정적이란 소식이다. 고향인 그곳은 험지가 아니고 안방 격이다. 그는 최근 출마 결심을 하면서 "일단 원내에 들어와야 훗날을 도모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자유한국당 내에 '일단 금배지를 단 뒤 앞날을 도모하자'는 주자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홍준표 전 대표가 대구 텃밭에서 호미질하는 모양새다.

대권 주자 대상을 좀 더 넓혀보면 권영진 대구시장이 차기 대권 도전을 시사하고 있고,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도 보수 주자로 부상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도 정계 개편 결과에 따라 언제든 두각을 나타낼 전망이다.

여권을 포함하면 영남권은 그야말로 대권 잠룡들의 온상이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영남의 맏형 노릇을 하면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고,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차기 주자로 오르내리는 가운데 김경수 경남지사, 김영춘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넘쳐난다.

이런 가운데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지난 2월 한국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선 한국당 강세 지역인 영남권을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

그런 황 대표에게 영남권 대권 주자가 많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는 차기 대권 주자로 영남권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수많은 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 잠룡들과 치르는 예선도 버겁지만 여권 주자들과의 본선 경쟁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두 번째는 총선 결과의 중요성이다. 황 대표의 경쟁자들은 대부분 안정권 지역에서 원내 복귀를 노리지만 황 대표는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하더라도 비참한 총선 성적표를 받는다면 책임론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어려운 상황 속에서 총선 승리를 완수한 뒤에도, 수많은 경쟁자들과 결전을 치러야만 보수 정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서 안착할 수 있는 현실이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정작 황 대표와 측근들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중진 의원이 탈당을 하고, 친박 회귀를 비판하는 여론이 늘고 있으나 모두 남 탓으로 일관하면서 여유롭다.

한 측근은 "어차피 대선이 다가오면 황 대표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재편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근거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남권 구심력을 예로 들었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 '우리가 남이가' '그래도 한국당'이란 정서가 되돌아올 것이라는 자의적 해석이다.

하지만 황 대표는 자신의 정치 스토리 부재 현실을 철저히 자각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처럼 총탄으로 부모님을 여읜 적도 없고 백주대낮에 면도칼로 좌상을 입으면서 '대전은요?'라며 당을 걱정하는 희생정신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보수 정권에서 장관·국무총리 등 따뜻한 자리를 거쳐, 특별한 기여 없이 대표 자리까지 무혈입성한 수준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어떤 희생적 모습을 보일지는 황 대표 본인의 몫이겠으나 많은 지지자들과 의원들은 황 대표가 당을 위해 뭘 던질 수 있을지 고대하고 있다.

그것이 대선 불출마든지 비례대표 후순위든지 상관 없다. '그 정도면 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황 대표가 자신을 던지는 모습에 지지자들은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될 것이다. 황 대표의 팬들이 늘어나고 총선 결과까지 만족스럽다면, 싸늘해진 당내 의원들의 시선도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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