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인성교육을 의무화한 나라는 우리가 처음이다. 인성교육진흥법에 따르면 인성교육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며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기' 위한 교육이다.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는 다들 이의가 없다.
하지만 법률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것으로 인성교육이 성공하리라 담보하긴 어렵다. 각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인성교육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천하느냐에 달렸다.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공감하고, 이해하고, 갈들을 해결하나가는 과정에서 인간답게 성장한다. 인성교육을 위해 학교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노력을 소개한다.

◆월성초교의 '우리 모두를 위한, 작은 한걸음'
바쁜 일상 속에서 다른 이들을 돌아볼 여유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때로는 남을 챙기는 게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래도 주변을 챙기는 이들이 있는 덕분에 사회는 좀 더 '살 맛'이 난다. 행동하는 시민들이 있다면 지역사회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다. 인성교육에서 강조하는 부분도 그런 것이다.
대구 월성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은 지난 6월 '블랙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학교 앞 화요시장의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량을 줄이는 데 힘을 보태보자는 시도였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정현우 학생은 "블랙홀은 모든 걸 빨아들인다. 비닐봉지도 그렇게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이번 활동 이름에 블랙홀을 붙였다"고 전했다.
이들이 블랙홀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한 번 만들어지면 좀처럼 분해되지 않고, 점차 마모돼 작아지면서 미세 플라스틱이 돼 각종 생물이 살아가는 데 악영향을 미친다.
약 한 달간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우리 동네 화요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시장을 찾기 전 학생들은 시장에서 관찰하고 싶은 점과 궁금한 것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상인들과 소통하고 주변을 관찰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일회용 비닐봉지를 상당히 많이 사용한다는 걸 확인, 비닐봉지 사용량을 줄여보자는 걸 목표로 잡았다.
학생들은 학교와 시장을 오가며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실시했다. 보통 하루에 몇 장의 비닐봉지를 사용하는지, 집에선 비닐봉지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떠한지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는 홍보용 광목 주머니를 구입, 화요시장 손님들과 월성초교 학생들에게 나눠주며 말을 건넸다.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고,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광목 주머니를 이용해보세요." 시장을 찾은 이들은 학생들의 활동을 보며 대견스러워 했다. '엄마 심부름을 할 때 광목 주머니를 들고 가겠다'는 학생도 생겼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같은 움직임이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달서구청에도 홍보 글을 전달했다.

물론 모두가 학생들을 따뜻하게 맞은 것은 아니다. 이성주 학생은 "인터뷰를 거절하는 분들도 있었다. 친절하게 '미안하다'고 하신 분도 있었지만, 대놓고 무시하는 분들도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것 자체로 배우는 점이 많다는 게 교사들의 말이다.
월성초교 유선향 교장은 "이 활동은 생명 존중, 배려, 절제, 사랑, 절약, 협동 등 많은 인성 덕목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라며 "학생들이 살아 움직이는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바른 인성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율원중의 '다정다감한 학교 문화 만들기'
지난달 초 슬슬 무더위가 힘을 얻기 시작한 오후. 대구 율원중학교 학생들은 교내 구름다리 아래로 속속 모여들었다. 잠시 뒤 펼쳐질 '다정다감 율원 말꽃 피우기'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학생들은 밴드부 버스킹(Busking·거리공연)을 즐기면서 바닥에 펼쳐진 대형 현수막에 친구, 가족, 선생님, 그리고 자신에게 보내는 감사 메시지를 남겼다.

이 프로그램은 '말'이 학생들의 교우 관계와 학교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 동아리 '율원 에이전트'가 이 행사를 앞장서 이끈다. 율원중은 지난해부터 다양한 이벤트를 중심으로 학교 구성원들이 따뜻한 인사말을 나누며 일상 속에서 '다정다감한' 학교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다정다감 율원 말꽃 피우기'가 지속되면서 혼자 다니는, 외톨이 학생이 사라졌다는 게 학교 관계자의 전언이다. 학생들은 어느새 혼자 밥을 먹던 친구를 챙기게 됐다. 갈등이 생겨도 힘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이 줄어들었다.
따뜻한 말과 음악이 학생과 교사, 선배와 후배, 친구들을 하나로 묶었다. 학생들 사이에선 "모두 모여 축제를 즐겨 보기 좋았다. 모두 즐긴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선배와 후배, 친구들이 스스럼없이 함께하며 마음을 나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는 등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교사들도 이 프로그램에 대해 호평했다. "교사와 학생 간 우정이 더 뜻깊게 느껴졌다" "버스킹을 마친 밴드부 학생들 곁에 친구들이 남아 뒷정리를 돕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정한 메시지를 적은 대형 천을 접으며 '야! 우리 학교 분위기 장난 아니다!'라고 감탄하는 학생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등 다양한 얘기가 쏟아졌다.

배영순 전문 상담 교사는 이날 행사를 기획, 율원 에이전트 학생들과 함께 운영했다. 배 교사는 행사 후 교사들이 다양한 메시지를 보내준다고 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학교 분위기가 좋아지니 우리도 행복해진다' '아이들이 감사 메시지를 쓴 내용을 보곤 마음이 따뜻해지고 뭉클했다' '참 잘했어요 손도장, 떡볶이 쿠폰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아이들을 보고 학교가 이렇게 즐거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등이 그것이다.
배 교사는 "이 이벤트가 진행되는 날은 선생님들이 더 행복해한다"며 "학교 분위기가 실제로 점점 다정다감해지는 걸 느낀다. 앞으로 지속적이고 개성적인 활동을 추가해 운영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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