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린데 대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단히 무모한 결정"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일본의 이번 조치에 대해 "이기적 민폐행위"·"인류 보편적 가치 위반" 등 전례없이 강경한 표현을 동원해 비판하고 "단호하게 상응조치를 하겠다"고 공언, 앞으로 한국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다각도의 '맞대응' 카드를 제시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이에 따라 한일관계는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특단의 돌파구가 나오지 않는 이상 극도의 경색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강 대 강'의 대치국면을 조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재로 열린 일본 각의에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한 지 약 4시간 만인 오후 2시께 청와대 여민관에서 긴급 국무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이 포함된 모두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외교적 해법을 제시하고, 막다른 길로 가지 말 것을 경고하며 문제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자는 우리 정부의 제안을 일본 정부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일본의 이번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일정한 시한을 정해 현재의 상황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협상할 시간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미국의 제안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한일 양측을 향해 협상기간 분쟁을 일단 멈추는 일종의 휴전 제안인 '분쟁 중지 협정'(standstill agreement) 합의를 제안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아직 미국이 중재안을 냈다는 것에 대해 공식 확인을 하지 않고 있으나,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으로부터 이런 제안이 있었고 이를 일본이 거절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외교적 해결 노력을 외면하고 상황을 악화시켜온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는 것이 명확해졌다"고 못박고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책임도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물론 미국이 제시한 외교적 해결 노력까지 외면한 일본에 한일갈등 사태의 근본적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이번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가 강력한 맞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결코 바라지 않던 일이지만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할 것"이라며 "일본이 경제 강국이지만 우리 경제에 피해를 입히려 하면 우리도 맞대응할 방안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큰소리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 이미 경고한 바와 같이, 우리 경제를 의도적으로 타격한다면 일본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조치에 따라 우리도 단계적으로 대응조치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한국 정부가 이미 다양한 '맞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했음을 내비친 대목이어서 관심을 끈다.
복수의 대응카드를 갖고 있으며 일본의 행동에 따라 각각 단계에 걸맞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WTO 제소 등 기존에 언급한 대책에 더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여부도 한국 정부가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여전히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지금도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을 원치 않는다"며 "멈출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일본이 일방적이고 부당한 조치를 하루속히 철회하고 대화의 길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이번 조치에 대해 "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명백한 무역보복이자 '강제노동 금지'와 '3권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 국제법의 대원칙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또한 "이번 조치는 일본이 (일본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강조한 자유무역질서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라며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일본 정부 스스로 밝혀왔던 과거 입장과도 모순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점은 이번 조치가 우리 경제를 공격하고 우리 경제의 미래성장을 가로막아 타격을 가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우방으로 여겨왔던 일본이 그와 같은 조치를 한 것이 참으로 실망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조치는 양국 간의 오랜 경제 협력과 우호 협력 관계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양국 관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글로벌 공급망을 무너트려 세계 경제에 큰 피해를 끼치는 이기적 민폐 행위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조치로 우리 경제는 엄중한 상황에서 어려움이 더해졌으나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되나 우리 기업과 국민에게는 그 어려움을 극복할 역량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는 소재부품의 대체 수입처와 재고 물량 확보, 원천기술 도입, 국산화 기술 개발과 공장 신·증설, 금융지원 등 기업 피해 최소화에 할 수 있는 지원을 다하겠다"며 "소재·부품산업 경쟁력을 높여 기술 패권에 휘둘리지 않고 제조업 강국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와 사, 국민이 함께 힘을 모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며 "정부와 우리 기업의 역량을 믿고 자신감을 갖고 함께 단합해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의 과거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양국 간에는 불행한 과거사로 인한 깊은 상처가 있다"며 "하지만 양국은 오랫동안 그 상처를 꿰매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으며 상처를 치유하려 노력해왔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가해자인 일본이 오히려 상처를 헤집는다면, 국제사회의 양식이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직시하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을 향해서도 "우리는 올해 특별히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새로운 미래 100년을 다짐했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던 질서는 과거의 유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국민의 민주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경제도 비할 바 없이 성장했다"며 "어떠한 어려움도 충분히 극복할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당장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도전에 굴복하면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된다. 지금의 도전을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새로운 경제 도약의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일본을 이겨낼 수 있고, 우리 경제가 일본 경제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독려했다.
문 대통령은 "역사에 지름길은 있어도 생략은 없다는 말이 있다.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라며 "지금 이 자리에서 멈춰 선다면, 영원히 산을 넘을 수 없다"고 거듭 밝혔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위대한 힘을 믿고 정부가 앞장서겠다. 도전을 이겨낸 승리의 역사를 국민과 함께 또 한 번 만들겠다"며 "우리는 할 수 있다. 정부 각 부처도 기업의 어려움과 함께한다는 비상한 각오로 임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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