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일 경제전쟁, 대구경북 경제계 여파 본격화…기업들 "어찌합니까"

1천120개 품목 개별허가로 전환, 90일까지 수입 늦춰져
대구시 대일수입 의존도 50% 이상 품목 6종, '캐치올 규제'까지 도입 시 피해 범위 더욱 커질 것
관광업계는 8월 이후 일본 여행 수요 없어, 매출 40% 감소 예상

일본이 2일 끝내 한국을
일본이 2일 끝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조선과 농수산, 금융 등으로도 확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2일 일본이 각료회의를 통해 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배제하면서 추가 피해가 현실로 나타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대구경북 경제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규제대상 1천120개품목 영향은? 안개속에서 대응책 고심 중

우리나라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서 그간 포괄 허가를 받거나 허가 면제를 받았던 1천120개 품목이 개별허가로 전환된다. 오는 28일부터는 이들 물자를 수입할 경우 사용처 등을 일일이 증명해야 하고 최장 90일까지 수입이 늦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지역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대상 품목이 1천여개가 넘는데다 한국과 일본의 품목분류체계가 달라 규제대상 품목을 파악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 기업들이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구체적인 수입량이나 품목 공개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대구시 경제정책과 관계자는 "HS코드(무역거래상품 분류코드) 6자리까지는 국제적으로 함께 쓰지만 이후 7~10 단위는 국가마다 다르게 쓰다보니 1천120개 품목을 파악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며 "품목 전체를 분석하기 보다 우선 수입비중이 높은 품목들을 하나씩 점검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한일 경제전쟁이 확산되면서 금지품목이 아니라도 안보를 이유로 수출을 통제하는 '캐치올' 규제까지 도입되면 더욱 난감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대구 한 산업용 설비업체 관계자는 "캐치올 규제까지 도입되면 수입 재개가 연말까지 미뤄질 수 있다"며 "지역 기업들은 수입 규제의 변수가 너무 많고 예측이 어려워 대응이 힘들다고 우려한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방직용 섬유, 화학공업, 차량·항공기·선박 등의 대일 수입의존도는 90%가 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방직용 섬유, 화학공업, 차량·항공기·선박 등의 대일 수입의존도는 90%가 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 수출도시 구미 기업들도 바짝 긴장

수출도시 구미의 관련 기업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함께 일본 의존도가 높은 공작기계·정밀화학 및 미래 산업인 자동차 배터리 등에서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특히 구미는 대일 수입 의존도가 높아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구미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구미의 경우 일본은 6위 수출국으로, 올 들어 6월까지 일본 수출액은 5억 달러 규모다. 더구나 수입 분야는 동남아에 이은 2위 수입국으로, 올 들어 6월까지 수입액 8억5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구미국가산업단지의 경우 탄소섬유, 배터리 등 관련 산업을 미래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어 한일 경제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구미의 미래 설계도 차질이 우려된다.

구미산단 내 LG디스플레이㈜, SK실트론, 도레이첨단소재 등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웨이퍼, 탄소산업 관련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재고 물량이 있어 당장은 괜찮겠지만 모두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이어서 수출입 규제가 장기화되면 커다란 손실을 볼 수 있다"고 걱정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사실상 비상경영 상태이지만 기업 차원에서 당장 마련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며 "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시급하다"고 했다.

또 일본의 수출 규제 여파로 LG화학이 구미형 일자리 사업으로 추진하는 배터리 양극재 구미공장 설립에도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대구시 기계·철강금속 등 업종 다수… 타격 클 것

대구시도 기계, 화학, 철강금속 등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일본의 수출제한조치 확대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2일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구 기업 854곳이 일본에서 6억5천73만달러 어치를 수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대일 수입의존도가 50%를 넘는 품목은 6종으로, 이 중 5종이 여파가 클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가장 대일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은 이차전지 제조용 격리막으로 83.4%가 일본산이었다. 이어 블랭크 마스크용 석영유리판(65.5%), 수치제어식 금속 절삭가공용 선반(63.5%), 수치제어식 연삭기(53.5%), 수직형 머시닝센터(53.5%) 등의 순이었다.

이차전지 제조용 격리막은 원재료인 폴리에틸렌 등을 유럽 제품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블랭크마스크용 석영유리판은 석영유리·레지스트 등 원재료의 30~40%를 일본에서 수입하는데다 재고물량이 3개월 분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품질 문제로 당장 수입선을 바꾸기 어렵고, 개발 및 상용화에도 3~5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수치제어식 금속 절삭가공용 선반은 연간 4,5건 정도 일본에서 수입하는데, 주요부품인 베어링이 수출 규제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시는 설명했다. 이 부품은 독일제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원가 상승이 문제다.

수치제어식 연삭기는 장비의 70%, 원소재의 30% 정도를 일본에서 수입한다. 원소재는 재고물량을 충분해 당분간 영향이 없겠지만, 대체수입선 확보나 재료 국산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금속공작 기계인 수직형 머시닝센터와 섬유화학기계인 직조기도 수입 의존도가 높지만 신규 투자계획을 가진 기업이 없어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컴퓨터 수치제어 공작기계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대구시는 이들 품목들이 실제로 수출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지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 섬유분야 기업들은 자동차, 전기·전자부품 등에 쓰이는 산업섬유소재의 수급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나 전동 기어 등에 쓰이는 아라미드 섬유, 고압가스 용기에 쓰이는 탄소섬유 등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부품업계와 의료기기 분야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재·부품 비중이 높지 않아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역 관광업계는 일본 여행객 급감으로 타격을 입고 있다. 대구시관광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대구를 찾은 일본인 입국객 수는 지난해보다 116% 늘었지만, 7월 내국인의 일본여행 취소율은 최대 8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 한 여행사 관계자는 "8월 이후 예약분은 100% 취소 상태로 대부분 여행사들이 30~40% 정도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며 "일본 여행은 수요층이 동남아나 다른 대체 여행지와 구분되는 탓에 뚜렷한 대책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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