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화 속 숨은 이야기] <17> 천재 화가의 뮤즈

피카소의 연인 도라 마르, 화가로 뒤늦게 빛나다

파블로 피카소 작,
파블로 피카소 작,

파블로 피카소, 우는 여인, 캔버스에 유화, 59.5 x 49cm, 1937, 테이트모던 미술관

올 6월 5일부터 7월 29까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도라 마르(1907~1997)의 사진과 회화 500여 점으로 구성된 특별전이 열렸다. 지금까지 그녀는 피카소(1881~1973)의 연인이자 뮤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사진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 그녀의 삶에서 불가분한 피카소와의 관계를 '도라 마르와 피카소'란 타이틀의 독립된 섹션으로 연출했는데, 피카소가 그린 도라 마르의 여러 초상화뿐만 아니라 그녀가 그린 피카소의 초상화도 있다.

1930년대에 그녀는 모델들의 정제된 관능미를 특이한 앵글로 포착한 사진들로 파리 패션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폴 엘뤼아르와 앙드레 브르통, 만 레이 같은 초현실주의 시인과 예술가의 친구였던 그녀가 남긴 초현실주의 계열의 기묘한 사진들과 포토몽타주들에서는 비범한 감각이 번득인다.

1936년 초, 쉰두 살의 피카소가 스물여덟 살의 도라 마르를 폴 엘뤼아르의 소개로 만났을 때 이미 그녀는 사진작가로서 유명했고, 독립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성격에서 우러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녀는 당시 여성들에게서 볼 수 없는 남성복을 즐겨 입기도 했다. 피카소는 그녀의 반짝이는 지성과 당당함에 반했다. 그녀도 당시 피카소가 마리-테레즈 왈터와 정리가 안 된 상태였고 둘 사이에 딸이 있는 걸 알면서도 그의 마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두 사람은 바로 동거에 들어갔고, 피카소는 활활 타오르는 창작열로 '도라 마르'란 제목이 붙은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다. 1937년에는 그녀를 모델로 여러 버전의 <우는 여인>이 스케치와 회화, 그리고 판화로 제작되었는데, 지금 소개하는 이 그림이 그중 가장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는 먼저 한 화면에 여러 시점이 중첩된 입체파의 특징, 예컨대 여인의 옆모습과 정면이 동시에 보인다. 그러면서도 머리카락과, 오른뺨을 가리는 손은 4분의 3 측면으로 보인다. 오장육부를 쥐어짜는 고통으로 울부짖는 듯한 여인의 모습은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삐죽삐죽한 검은 선으로 강조된 눈매와 아래로 처진 짙은 눈썹은 두려움과 불안감을 극대화한다.

1937년 4월 26일,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카가 나치와 파시스트 이탈리아 연합군의 폭격으로 불바다가 된 사건이 일어났다.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스트 프랑코 정권에 반대하던 반란군들은 전선으로 떠난 후라 애꿎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무참히 희생되었다. 피카소는 고국에서 벌어진 이 천인공노할 사건에 격노했고, 그의 일생일대 역작인 <게르니카>를 제작하게 된다.

도라 마르 또한 사회적・정치적 신념으로 일찍부터 파시스트에 반대해 좌파 단체인 '옥토버'에서 활동했다. <우는 여인>은 <게르니카>에서 죽은 아이를 붙잡고 울부짖는 여인의 모델이 된다. 수개월에 걸쳐 <게르니카>가 제작되는 동안 피카소와 도라 마르는 동지애로 똘똘 뭉쳐 끊임없이 서로의 예술적 견해를 주고받았다. 그랑-오귀스탱 거리에 위치한 피카소의 작업실에서 이 기념비적인 작품(349.3 x 776.3cm)이 제작되는 모든 과정을 도라 마르는 사진으로 남겨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이 무렵 그녀는 피카소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카소의 삶을 거쳐 갔던 7명의 여인 모두 그에겐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여는 열쇠였지만 도라 마르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여인은 없었다. <도라와 미노타우로스>란 작품에서 반인반수가 젊은 여인을 누르고 있는 모습은 바로 피카소와 도라 마르의 관계를 은유하는 알레고리라 하겠다. 한 인터뷰에서 피카소는 자신에게 도라 마르는 '우는 여인'으로 남는다고 밝혔다. 천재 화가 피카소에게 그녀는 걸작 <우는 여인>과 <게르니카>가 세상에 나오는 데 필요했던 존재였다. 약 십 년간에 걸친 파란만장했던 피카소와의 관계가 끝나자 도라 마르는 심한 우울증에 걸려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자크 라캉으로부터 치료를 받았다. 그녀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다 밀랍 날개가 녹아 바다에 떨어진 이카로스를 닮았다. 1997년에 사망하기까지 긴 세월 동안 그녀는 스스로를 사람들로부터 격리했다. 지독한 고독과 싸우면서도 그녀는 결코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현대미술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퐁피두센터에서 도라 마르에게 대규모 회고전을 헌정함으로써 그녀는 비로소 예술가로서의 이름을 당당히 빛내게 되었다.

박소영(전시기획자, PK Art & Medi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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