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관학으로서의 성균관·향교와 달리
서원은 지방 지식인 사설 교육기관
철저한 보존관리 약속한 문화재청
관광지 넘어선 적극적 발전 방안을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지난달 6일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여기 포함된 서원은 연속 유산 형태의 9곳으로, 영주의 소수서원,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의 옥산서원, 달성의 도동서원, 함양의 남계서원, 정읍의 무성서원, 장성의 필암서원, 그리고 논산의 돈암서원이다. 각 매스컴에서는 '한국의 서원'이 우리나라의 14번째 세계유산이 되었다는 뉴스를 앞다투어 전하였고, 많은 사람이 이 반가운 소식에 뿌듯해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알아야 할 것, 즉 서원의 세계문화유산 선정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도되지 않아서, 내용보다는 겉모습이나 상대적 순위가 중요시되는 세태를 보는 듯하여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이 '한국의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든 것일까? 그것은 뛰어난 건축술이나 주변 풍경과 어울리는 시각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라는 영문명처럼 서원이 성리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문의 장소였기 때문이며, 사람들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교적 문화와 전통의 특출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서원의 역사는 조선 중기인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관학으로는 한양에 성균관, 그리고 지방에는 향교(鄕校)가 있었는데, 이들과 달리 서원은 지방의 지식인이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한국의 서원'은 학문기구일 뿐 아니라, 서적을 펴내는 출판, 책의 보관과 대여를 담당하는 기구이기도 하였다.

또한 서원은 지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를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삼고 선현의 제사를 지내는 제향 시설이기도 하였으며 지역사회 유지를 위한 향촌 자치 운영 기구의 역할도 겸하였으므로, 교육, 종교, 행정의 여러 분야에 걸쳐 성리학이 조선 시대의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렇게 서원은 성리학 가치에 부합하는 지식인을 양성했고, 충과 효, 그리고 예를 강조하는 사회 전통을 자리 잡게 하였다.

서원을 방문하면 놀라게 될 때가 있는데, 입구가 생각보다 작고 높이도 낮아서 키가 아주 큰 사람의 경우는 머리를 숙이거나 허리를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궁궐 문이라도 되는 듯 엄청나게 큰 입구를 가진 요즘 대학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데, 학문을 하는 겸손한 태도와 검소한 선비의 모습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물론 서원이 항상 긍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만은 아니다. 붕당정치에 휩쓸리기도 하고 급기야 '서원철폐령'까지 내려졌던 부정적인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두는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주는 서원의 역사로서 간직되고 연구되어야 한다.

'한국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철저한 보존관리를 약속하였다. 하지만 보존관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여태 해오던 것처럼 기껏해야 관광지로 탈바꿈시키거나 주변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유네스코로부터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로서 인정받은 문화유산을 제대로 이어나갈 적극적 발전 방안이 필요하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문화유산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에게 시사점이 많은 곳이다. 루브르는 원래 도시 방어를 위해서 지어진 요새에 불과했지만,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 확장되면서 왕궁이 되었고, 베르사유 궁전에 정궁의 자리를 내준 이후에는 왕실 아카데미와 살롱으로 사용되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에 박물관으로 탄생하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다녀가는 박물관이기에 상업화로 치우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나, 프랑스 역사의 산실로서 풍부한 자료를 다양한 매체로 제공하려는 노력은 매우 진지하다.

'한국의 서원'. 미래 세대와 더불어 향유할 수 있도록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가꾸어 나가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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