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광고를 만들수록 그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특정 상품을 예로 들 수 없는 지면이라 아쉽지만 잘 쓰인 글은 브랜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전국의 다양한 광고주들이 기업의 제품을 들고 필자를 찾아온다. 그리고 사장님은 제품의 기능에 대해서 열변을 토한다. 물론 제품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제품을 어떻게 인식시킬까?'라는 문제이다. 그 인식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슬로건이다. 그 단 한 줄의 글이 소비자 언어가 되고 브랜드의 이미지가 된다.
미국 유학 시절, 필자는 암트랙(Amtrak)이라는 기차를 20시간 타고 애틀랜타에서 뉴욕으로 여행을 간 일이 있다. 난생처음 가보는 뉴욕행 기차에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단 한 줄의 문장만 있었다. 바로 'I Love New York'. 아직 뉴욕을 두 눈에 담지조차 못했음에도 필자는 벌써 뉴욕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무런 수사법이 없는 저 단순한 문장이 뭐라고 말이다. 유학 생활 동안 향수병이 가득했던 필자는 대구시에도 이런 문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행복한 시민, 자랑스러운 대구' 민선 7기인 지금, 대구를 표현하는 문장이다. 대구시에서 고민해 내놓은 문장인 만큼 훌륭하겠지만 필자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요즘 브랜드 슬로건에서 형용사는 잘 쓰지 않는 트렌드이다. 명사를 꾸미는 성질을 가진 형용사를 요즘 사람들은 더 이상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장의 거품 역할을 하는 부사, 형용사가 없는 담백한 문장을 선호한다. 둘째, 단어의 힘이 아쉽다. 카피라이팅을 할 때 피해야 할 단어가 있다. 그것이 바로 행복, 아름다움, 희망, 미소와 같은 단어이다. 이미 1980, 90년도에 너무 많이 썼던 단어라 지금은 그 단어들에서 힘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좋은 의미가 있음에도 싫증 난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로 민선 6기의 슬로건이었던 '오로지 시민 행복, 반드시 창조 대구'라는 워딩 역시 아쉽다. 문장에 없어도 되는 부사의 반복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창조 대구'가 되기 위해서 또는 '자랑스러운 대구'가 되기 위해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던졌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대구를 표현한 슬로건은 평이한 단어의 조합이었다. 이렇게 되면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점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구시의 도시 브랜딩 과정을 보면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것 같다. 혹시나 비난의 소지가 있을까 봐, 낯선 슬로건으로 시민들의 미움을 사게 될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 공무 기관으로서 이것은 당연한 행보이다. 시의 일을 하는 분들의 관점에서는 안정이 최우선 과제이다. 비난의 소지가 있는 경우 그 일을 진행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는 순간 도시 브랜딩은 물 건너간다. 비난이 전혀 없는 도시 브랜딩을 하겠다는 건 '나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있더라도 불행한 삶을 살 것이 뻔하다.
서울 출장을 마치고 대구에 들어올 때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단 한 줄의 문장. 그 문장만 들어도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드는 한 줄을 필자는 지금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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