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동구 신천동 신화여관 앞이 유일한 단서"…25년째 혈육 찾아 헤메는 허상덕 씨

친부모 만나고 싶어 "아무 걱정하지말고 죄책감 내려놓으셨으면"

친부모 찾기 위해 대구를 방문한 허상덕(니콜라스 랄리·왼쪽) 씨 부부. 김태형 기자 thk@imaeil.com
친부모 찾기 위해 대구를 방문한 허상덕(니콜라스 랄리·왼쪽) 씨 부부. 김태형 기자 thk@imaeil.com

"부모님을 만나 걱정하지 말라고, 죄책감 느끼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분들도 저의 빈 자리가 아픈 상처로 남았을 거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이렇게 잘 컸어요."

45년 전 벨기에로 입양됐던 허상덕(45·니콜라스 랄리) 씨는 1974년 6월 14일 오전 6시 30분쯤 대구 동구 신천동 1291번지 신화여관 앞에서 발견됐다.

기록에 따르면 허귀선 씨가 그를 발견해 당시 동구 송라파출소에 신고했다. 허성덕이라는 이름도 발견자의 성을 따 임의로 지은 것이다.

허 씨는 입양 당시 돌이 채 지나지 않은 갓난아기였다. 때문에 대구와 관련해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전혀 없다. 동구 송라시장은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살면서 형성된 곳으로 송라파출소라는 지명에서 당시 허 씨 가족이 당시 송라시장 인근에 살았을 것으로 유추할 뿐이다.

허상덕(니콜라스 랄리) 씨의 입양 당시 사진. 허상덕 씨 제공.
허상덕(니콜라스 랄리) 씨의 입양 당시 사진. 허상덕 씨 제공.

벨기에로 입양됐던 허 씨는 미국인 양부모를 따라 미국 동부 뉴저지주 페어헤이븐에 정착했다. 그는 하버드대학교와 와튼스쿨 MBA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 굴지의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도 '출생'에 대한 이끌림은 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부인 엘리자베스(42) 씨 역시 한국인 입양아다. 부부 모두 가족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것이 유일한 혈육인 친딸 앞에서 가슴 한 켠의 멍에로 남아있다.

허 씨는 "벨기에로 입양될 당시 비행기 안에 나를 포함해 50명이 넘는 한국 아이들이 있었다. 입양아 행적을 조사해보니 누구에게 인도됐는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엄청나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며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한국이라는 뿌리는 언제나 갈망 대상이다.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사실을 알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털어놨다.

25년 가까이 부모를 찾아 한국을 오가던 그는 지난달 29일 대구경찰청을 방문해 처음으로 DNA검사를 받았다. 유전자 기술의 발전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다.

허 씨는 1995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홀트복지관 등을 찾아 헤맨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을 방문해 부모님 소식을 수소문하고 있다. 2002년부터 2년 동안은 아예 한국에 살기도 했고, 심지어 신문 광고를 낸 적도 있었다.

그는 "만약 부모님이 이 기사를 본다면 나는 아무 원망도 섭섭함도 없으니 혹시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느꼈다면 거두시면 좋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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