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2년 반 동안 미국 시카고시 한국총영사관 경찰주재관으로 근무하면서 미국 사회 저변에 흐르는 진면목을 직접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제복'에 대해 미국인이 가지는 인식은 남달랐다.
제복 자체가 갖는 권위는 물론, 제복을 입은 사람(이하 제복인)에 대한 시민의 존중과 감사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복인은 각종 위기 발생 시 언제든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을 각오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9·11 테러 발생 시 경찰관과 소방관의 순직이 가장 많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제복이 권위를 가지기는커녕 경찰관을 폭행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심지어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부의 일탈로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제복인이 겪는 작금의 현실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경찰관이 권위를 잃고 무력해질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이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부족한 어린이·청소년·장애인·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대구에서 공무 중 다친 경찰관만 489명이다. 연 100명가량의 공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10년간 순직 경찰도 8명에 이른다. 이렇듯 범죄 현장은 예측하지 못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언제 어디서든 경찰관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경찰은 시민들로부터 공동체 질서유지와 안전을 책임지는 숭고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범죄와 사고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의 책무는 어떤 이유든 평가절하될 수 없다. 실추된 제복 경찰의 정당한 권위와 신뢰 회복에 이제는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외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제복 입은 그 나라 경찰을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와 다른 제복 디자인에도 호기심이 생기지만 경찰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나라 전체를 인식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한 나라의 경찰이 당당하고 친절하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 인상은 그 나라 국민과 국가 전체 이미지로 남게 된다. '보비'(bobby)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영국 경찰을 보면서 영국의 민주주의 역사와 전통, 위풍당당한 영국이라는 국가를 보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희생을 국민들이 인정해 준 덕분이다.
앞으로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면 경찰의 권한에 비례해 책임이 더욱 커지게 된다.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은 오로지 시민 안전과 인권 보호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적법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등 제복인으로서 책임과 공복 의식을 확고히 갖추어야 한다. 아동 대상 성범죄 등 엄벌해야 할 범죄와 생계형 소액 절도 등 관용과 공동체 복귀가 가능한 사안을 구분하고 구체적 타당성을 잘 살펴 일반 시민의 정의 관념에 맞도록 세심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번 대구경찰청 신임 순경 공채 시험 경쟁률이 132대 1을 기록했다. 직업 경찰관이 되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우수 인재들이 경찰직에 많이 들어오게 되면 시민에게도 보다 질 높은 치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경찰에 대한 신뢰 수준은 아직 낮고, 거리감을 가진 시민들도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경찰이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서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지속 노력한다면 시민으로부터 사랑받고 존중받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으로 믿는다. 경찰은 시민과 유리되어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경찰이 곧 시민이고 시민이 곧 경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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