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봉오동 전투 리뷰

영화 '봉오동 전투'
영화 '봉오동 전투'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의 개봉 시점은 참으로 절묘하다.

지난해 촬영에 들어가 올 초에 모두 끝났으니 현재의 한일 갈등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이 초유의 경제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개봉했으니 흥행판으로 보면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과연 99년 전 그날 승리의 감격을 지금의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로 전해줄 수 있을까?

봉오동 전투는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듬해인 1920년 6월에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유인해 승리한 전투다. 만주 봉오동에서 일본군 150여명을 사살한 최초의 독립군 승리 전투다.

영화는 일본군을 천혜의 함정인 봉오동으로 끌어오기 위한 주인공들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다. 독립군이 일본 초소를 습격하며 승기를 잡자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편성해서 독립군 토벌작전을 시작한다. 항일 대도를 휘두르는 해철(유해진)과 젊은 독립군 분대장 장하(류준열), 해철의 오른팔인 저격수 병구(조우진)는 종횡무진 활약하며 일본군을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한다.

영화 '봉오동 전투'
영화 '봉오동 전투'

'봉오동 전투'는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만주에서 싸운 독립군의 전투를 리얼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전투 장면은 총알이 스치듯 실감나고, 일본군의 만행도 치를 떨게 한다. 특히 벌판과 능선, 계곡과 숲 사이를 뛰어다니며 총을 쏘는 장면 등은 스피드가 넘친다.

제작진은 실제 봉오동에서 촬영하려고 했지만 외교 문제로 실패했다고 한다. 봉오동과 비슷한 장소를 섭외하기 위해 로케이션에만 15개월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다. 그래서 어떤 영화에도 볼 수 없었던 웅장하고 멋진 배경들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봉오동 전투'는 아쉬움이 많은 영화다.

스토리의 강약 조절에 실패했다. 마지막 결전을 위해 필요한 긴장감을 초반에 다 허비하고, 작은 추격전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긴장감이 응축될 여유를 주지 않은 것이다. 전투 게임처럼 레벨만 반복되니 관객들이 쉽게 지쳐버린다.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끌어가는 배려보다는 장면 장면마다 관객에게 영합하는 데 급급한 인상이다.

또 하나는 두서없는 캐릭터다. 영화는 해철과 병구, 그리고 장하를 중심으로 끌어간다. 그런데 캐릭터들이 접착제 없이 제각각 튀어간다. 해철은 "나라 잃은 설움은"이라면서 연설조의 대사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장하는 혼자 전력 질주하고, 둘 사이에서 유머로 기름칠을 할 병구는 비중이 낮다.

영화 '봉오동 전투'
영화 '봉오동 전투'

여성 독립군 자현은 구색 갖추기처럼 존재감이 없고, 일본군 소년병은 뜬금없다. 소년병은 "일본군이 더 미개하다"며 할복까지 시도하는데 일본군의 잔학한 살상을 '청불'(청소년 관람불가) 수준으로 보여주고, 거기에 그런 메시지를 캐릭터를 통해 또다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과잉이다.

'봉오동 전투'의 가장 큰 아쉬움은 지나치게 감성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어제 농사를 짓다가 오늘 총을 잡으면 바로 독립군"이라며 민초들의 저항의식을 일일이 대사로 '중계'(?)하다시피 한다. 잔혹한 일본군과 달리 탄 감자 한 알도 나눠 먹는 독립군의 선한 묘사 등은 너무나 작위적이다. 70,80년대 횡행했던 국책 반공영화를 보는 듯하다. 누나와 누이를 등장시킨 신파성, 팔도에서 올라온 민초들의 사투리 유머 등은 기시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관객의 감성을 자아내기 위해 지나치게 잔혹하게 묘사한 것도 아쉽다. 일본군이 마을을 습격해 살육하는 장면이나 일본군 장교를 해철이 칼로 여러 차례 내리치는 장면 등은 '15세 관람가'의 수준을 넘어 보인다. 134분이라는 러닝타임 또한 과하다.

'봉오동 전투'는 '명량'(2014), '암살'(2015), '밀정'(2016), '군함도'(2017) 등 이른바 항일영화의 연장선 속에 있는 영화다. '봉오동 전투'는 아픔의 역사뿐 아니라 승리의 역사를 가슴 벅차게 전하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잘 읽혀진다. 그러한 진정성도 사운드와 특수효과, 카메라 워크, 로케이션 등으로 잘 드러난다. 다만 드라마가 세련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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