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어머니의 숟가락 /이경숙

이경숙씨
이경숙씨

우묵하게 패인 안쪽, 달덩이 하나 떴다

오래전 나만의 식탁에서 유목의 초원까지

숟가락 하나가 떠올렸던 무수한 달들을 헤아리며

후후 숨결을 불어넣어주던 어머니

삶에서 살을 덜어내고 미음이 남아있다

불룩하게 부푼 뒤쪽, 거꾸로 들어선 내가 있다

최초의 숟가락을 물고

따뜻한 모음을 받아 삼킨 입술이

삶과 죽음의 경계라면

턱받이를 한 어머니의 숟가락은 삽

스스로는 한 술 뜰 힘도 없는 어머니가 비스듬히 누워 있다

무수히 들락거린 입속으로 마지막 미음이 들어가고

손이 떨리고 숟가락이 떨어지고,

우묵한 안쪽, 그믐이다

불룩한 뒤쪽, 상처투성이다

오늘은 엎어놓지 말라던 저 삽으로 무덤을 파고

죽은 자의 밥상 위에 얹어놓았다

오래전 암사동 신석기 시대 주거지에서 흙숟가락이 나왔다

멀리 몽골 초원 무덤에선 청동숟가락이 나왔다

닦아도 닦아도 놋숟가락의 녹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밤에도 저 달덩이는 얼룩덜룩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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