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Viveka, 한국명은 공재옥입니다. 스웨덴인인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1982년 두 살배기일 때 사랑하는 스웨덴 가족에게 입양되었습니다.
제가 "바다 건너 한국에서 온 국제 입양아입니다"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면 사람들은 제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너의 가족은 너를 만난 것이 정말 행운이야!" 그 말에 "제가 우리 스웨덴 입양 가족을 만난 것이 더 행운이지요" 라고 답합니다.
저의 스웨덴 가족은 저의 세상의 전부이며 제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때까지 저에게는 우주 그 자체였습니다. 저를 길러주신 엄마, 아빠, 언니는 저를 사랑해주시고 제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 가족입니다. 저는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를 보호하고 진심으로 저를 아껴주는 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25세의 성인이 되어 한국에 갈 때까지는 느껴본 적 없던 마음의 짐입니다. 저는 석사 학위 논문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러 처음 한국을 방문했고, 서울 소재 스웨덴 대사관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위해 또 한 번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저에게 있어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 문화, 음식, 언어, 예절을 다양하게 경험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됐다는 점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무엇을 가치롭게 여기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그 사실에 감사합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제가 만난 한국인들은 제가 입양된 사실을 알고 나서 광장히 부끄러워했습니다. 심지어 제게 사과하는 한국인도 있었습니다. 난 한번도 부끄럽다고 여긴 적 없는 일에 대해 처음 만난 사람이 진심어린 사과를 건네는 건 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해외입양이 한국에서는 모두가 부끄럽게 여기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나는 더 많은 마음의 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입양보내야 했던 한국의 어머니들께 전합니다. 아이를 입양 보내야 했던 결정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마세요. 1950년대 초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어머니들은 삶의 터전을 되찾고자 고생해야 했습니다. 낭비할 시간도, 돈도 없었습니다. 사회를 재건하는 데에 너무 바쁘셨습니다.
당신들의 노력의 결과는 놀랍습니다. 당신들이 성취하신 경제 성장으로 한국은 동남아시아 네 개 강국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불과 몇 세대 만에 이룬 성과지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경제 성장을 이룩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경제 성장과 복지는 당신들께서 힘들게 일하신 대가입니다. 하지만 고된 일과 노력에 따르는 또 다른 결과들도 있었지요. 불행하게도 그 중 하나는 20만명의 해외 입양아입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최선을 다하셨고 두고두고 후회하실 결정을 하셔야 할 만큼 불행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안전망은 없었습니다. 머물 곳도 없었을 거예요.
어머니께서 출산하신 적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어머니께서는 결혼을 꿈꾸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앞날이 깜깜하여 어머니는 절 입양 보내야 하셨겠지요. 어머니의 입양 결정은 어머니와 저 모두가 감당해야 할 결과였지만 제가 보기에는 옳은 결정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옳은 일을 하셨습니다.
나의 어머니, 저를 위해 울지 마세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무엇보다도 남들은 결코 어머니 입장이 되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남들이 함부로 어머니를 판단하도록 두지 마세요. 절대로 그래선 안 됩니다. 이 편지는 어머니께 모든 것을 감사하기 위한 편지입니다.
저는 정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제 삶을 조금이라도 아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람과 사랑으로 제 인생은 충만합니다. 저는 가정도 꾸렸습니다. 예쁜 딸 아이와 제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남편, 제가 좋아하는 일, 좋은 동료들, 좋은 친구들, 좋을 때든 나쁠 때든 저를 위해 항상 곁에 있는 사람들과 무엇보다도 저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가족들.
수십년 전 어머니께서 어려운 결정을 하셨기에 지금의 저는 행복한 장소에서, 행복한 가족 안에서, 그리고 제가 꾸린 가족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저를 위해 울지 마세요.
◆공재옥 씨의 어머니를 찾습니다.
공재옥 씨는 1980년 7월 18일(당시 생후 3개월 추정) 부산 금정구 노포동 한 지하철역에서 발견됐다. 생년월일은 1980년 5월 2일로 추정된다. 공재옥 씨는 1주일동안 임시보호소(현 남광종합사회복지관)에 머물렀고 2년간 해운대구 반송동 '성모보육원'(현 아이들의 집)에서 지내다 1982년 스웨덴으로 입양됐다.
2005년 3월 대구를 방문하며 한국 땅을 처음 밟았고 2006년 2월 스웨덴 대사관 인턴십에 지원해 한국을 방문했다. 4개월간 인턴생활을 하며 뿌리찾기는 계속되었지만 친부모를 찾지 못했다. 지금은 두 살 난 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스웨덴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공재옥 씨의 가족이거나 가족에 대한 정보를 알고 계신 분은 계명대학교 간호대학 박경민 교수(053-258-7651)에게 연락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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