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기획] 영화 '봉오동 전투' 홍범도…김좌진과 '청산리 전투' 등장한다면?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 매일신문DB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 매일신문DB

영화 '봉오동 전투'가 요즘 화제다.

지난 7일 개봉 후 일일 관객수 1위를 줄곧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독립군이 일본군에 승리한 실제 봉오동 전투를 다룬 작품이다. 그래서 광복절을 앞둔 시기인 것은 물론,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인한 국민들의 분노가 더해지며 영화 흥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청산리 전투 승리, 김좌진과 홍범도 함께 이끌었다

그러면서 역사 속 봉오동 전투를 이끈 인물인 독립운동가 홍범도(1868~1943)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요즘 여느 역사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도 한 사건 속 익히 알려진 위인보다는 이름 없이 활약한 주변 인물들을 그린다. 교과서로 봉오동 전투의 주역이라고 배운 홍범도보다는 한마음으로 뭉쳤던 독립군, 민초들을 비춘다.

그럼에도 영화 말미 '조연' 홍범도의 등장은 꽤나 강렬하다. 의외의 배우가 특별출연한 것은 물론, 사건의 기승전결을 모두 기획한 주인공이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어서다.(물론 이 영화의 제작자가 누구인지 아는 관객들에겐 충분히 예상했던 캐스팅일 수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 관람 후 자연스럽게 '봉오동 전투'와 '홍범도'를 검색해보게 마련이다.

봉오동 전투(우측 상단) 및 청산리 전투(좌측 하단) 관련 지도. 두산백과
봉오동 전투(우측 상단) 및 청산리 전투(좌측 하단) 관련 지도. 두산백과

또한 영화를 계기로 독립군이 대승을 거둔 또 다른 전투인 '청산리 전투'에 대한 관심도 생겨나고 있다. 극중 홍범도가 다음 전장으로 '청산리'를 언급하기도 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에, 청산리 전투는 4개월 뒤인 1920년 10월에 벌어졌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런데 영화 봉오동 전투의 제작자가 영화 '명량'의 감독 김한민이기 때문에,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장군 3부작'(명량, 한산, 노량)처럼 청산리 전투도 봉오동 전투의 차기작으로 제작되는 것은 아닌지, 추측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럴 경우, 흥미로운 등장인물 구성이 가능하다. 홍범도와 독립운동가 김좌진(1889~1930)이다. 교과서에는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 김좌진이라고 설명돼 있는데, 사실 역사 속 청산리 전투에는 홍범도도 참여해 활약했다. 실은 봉오동 전투부터 흩어져 있던 독립군들이 본격적으로 연합 작전을 펼쳤고, 청산리 전투는 독립군의 연합이 절정에 달한 사건이다. 그 수많은 독립군 수장들 가운데 특히 김좌진과 홍범도가 빛났다는 평가다.

즉, 만약 청산리 전투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홍범도와 김좌진이 의기투합해 전략을 짜고 실행에 옮기고 위기도 겪는 끝에 승리를 거두는 등 동고동락하는 모습이 극의 중심에 자리할 수 있다. 영화 봉오동 전투처럼 두 사람이 짧게 출연하더라도, 그 임팩트는 클 수 있다.

◆머슴·포수·의병 출신 흙수저 홍범도 VS 육군무관학교 나온 군인 김좌진

사실 홍범도와 김좌진은 여러모로 비교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대척점에 있기 보다는 '끈끈한' 동지 관계가 어울린다. '동지'이면서 실은 '라이벌'일지도 몰랐다는 콘셉트로 영화의 매력을 높일 수 있는 부분.

우선 홍범도는 머슴 집안 출신, 김좌진은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대비된다. 다만 김좌진은 15세 때 집안의 종 30명이 보는 앞에서 종문서를 불태우고 그들에게 논과 밭을 나눠 준 이력이 눈길을 끈다. 실제 그랬던 각색을 하건 두 사람의 향후 유대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이다.

또한 홍범도는 젊은 시절부터 포수(사냥꾼) 생활을 하며 실전에서 명사수로, 또 의병 및 독립군 대장으로 성장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장비. 코에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11
장비. 코에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11

그러면서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칭을 얻은 홍범도는 삼국지연의의 장비 같은 인물이다. 홍범도가 총을 잘 쐈고 지휘관으로서도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점은 "장수 목 베기를 자기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했다"는 장비의 무예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삼국지연의에서 장비는 힘만 강하고 지혜는 다소 부족한 인물로 그려지기는 하는데, 이와 별개로 장비가 유비군과 유장군의 전쟁 당시 적장 엄안을 지략 및 지구전을 펼쳐 생포한 게 유인 작전이 핵심이었던 봉오동 전투를 지휘한 홍범도와 닮았다.

반면, 김좌진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해 나름 엘리트 군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또한 재산을 털어 학교를 세우는 등 애국계몽운동에 앞장 선 지식인이기도 하다. 무오독립선언서 39명 지도자 중 1인으로 서명하는 등 향후 지도자(정치인)로 성장할만한 면모도 일찍부터 보여준 바 있다. 본격적으로 독립군 활동에 나선 후로는 육군무관학교 경험을 살려 사관연성소에서 독립군을 양성한 이력도 눈길을 끈다.

관우. 코에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11
관우. 코에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11
미축, 노숙. 코에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11
미축, 노숙. 코에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11

즉, 김좌진은 삼국지연의의 관우(노련한 지휘관,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교육자), 미축 또는 노숙(부자였던 미축과 노숙은 각 주군인 유비와 손권을 재산의 상당 부분을 써 가며 지원했고, 이게 유비의 촉나라 및 손권의 오나라가 태동하는 기반이 됐다) 등의 캐릭터를 합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강유. 코에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11
강유. 코에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11

또한 두 인물은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독립군을 이끌고 끊임 없이 일본군과 맞섰다는 점에서 선대 제갈량의 유지를 이어 받아 촉나라 후기 강국 위나라를 상대로 북벌을 지속했던 문무 겸비 지휘관 강유 같은 인물로도 볼 수 있다. 실은 당시 홍범도와 김좌진 말고도 다수의 독립군 수장들이 그런 힘겨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한 처지를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강유도 그랬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맨 앞 왼쪽부터 류준열, 조우진, 유해진. 배급사 제공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맨 앞 왼쪽부터 류준열, 조우진, 유해진. 배급사 제공

◆조국 독립 못 보고 눈 감은 홍범도와 김좌진

1920년대 전성기가 지나고 독립군 활동도 쇠퇴하면서 두 사람이 나아간 행보도 서로 달랐다.

홍범도의 독립군은 약소민족의 독립을 원조한다고 선동하던 소련 정부의 지원을 받았고. 이후 소련군에 속하기도 했지만, 소련 공산당의 배반으로 무장해제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홍범도는 1930~40년대 소련에서 한인 지도자로 활동하며 고려인으로 정착했다.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청산리 전투 이후 홍범도와 함께 대한독립군단 부총재가 된 김좌진도 소련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지원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여러 독립운동가와 함께 소련으로 갔지만, 다시 만주로 돌아와 신민부를 창설, 총사령관이 됐다. 성동사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양성에도 힘썼다. 이어 신민부 후신 한국총연합회의 주석이 됐지만, 1930년 41세의 나이에 북만주 산시역 앞에서 암살당했다.

두 사람 모두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홍범도와 김좌진은 인생의 후반부, 이념이 대립하던 시대의 풍파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긴 했지만, 그 목적은 똑같은 조국의 독립이었다는 평가다.

이처럼 이념 문제가 얽히면 과거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쉬이 다루지 못했다. 공산당, 사회주의, 좌파, 북한 등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인물, 사건은 영화 소재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가 이념 문제와 상관 없이 오롯이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다. 광복 후 월북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영화가 외면했던 독립운동가, 의열단장 김원봉을 최근 영화 '밀정'과 '암살'에서 잇따라 다룬 게 대표적 시도이다.

독립운동가 김원봉 역 배우. 왼쪽은 영화 '밀정'의 이병헌. 오른쪽은 영화 '암살'의 조승우. 배급사 제공
독립운동가 김원봉 역 배우. 왼쪽은 영화 '밀정'의 이병헌. 오른쪽은 영화 '암살'의 조승우. 배급사 제공

따라서 과거 교과서에서 김좌진은 본받아야 할 위인으로 다뤘으나 홍범도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청산리 전투라는 하나의 사건 안에서 힘을 모은 두 사람을 영화가, 부담 없이, 함께 조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봉오동 전투의 흥행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전작의 성공 없이 차기작은 제작에 돌입하기 힘들어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