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한일 경제전쟁에서 빛나는 시민의식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시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었다. 무도(無道)한 일본 아베 정부에 대한 항거다.

9일 대구에서 처음으로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경제보복 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NO 아베'를 외쳤다.

서울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10일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7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아베 규탄 시민행동'이 '아베 규탄 4차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시민행동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배상 판결로 촉발된 일본의 경제보복 조처가 '침략 역사에 대한 반성 거부'이자 '부당한 보복 조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경제보복에 시민들의 첫 대응은 불매운동이었다. 이는 민주시민의 자발적인 주권 행사다. 불매운동은 들불처럼 번졌다. 하지만 열기가 고조되면서 우려가 제기됐다. 격한 반일(反日)로 비화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일식집은 손님이 끊겼다. 주인이 한국인이며, 국내산 재료를 쓰는 곳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일본산 자동차는 세차장에서 퇴짜를 맞기도 했다. 일본산 제품을 쓰거나 사려는 사람에게 눈을 흘기는 일도 벌어졌다.

정치권과 지자체는 한술 더 떴다. 여당은 '열두 척의 배' '죽창가' '의병' 등의 상징어로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 '도쿄 여행금지' '올림픽 보이콧' 등의 제안도 내놨다. 일부 지자체는 한일 교류까지 중단했다. 자유한국당은 '신쇄국주의'라며 정부와 여당에 총질을 했다. 시민들은 혼란을 겪었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며, 어떤 것을 먹지 말아야 할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는 엇나간 애국주의를 경계했다. 서울의 한 구청은 'NO 재팬' 깃발을 걸었다가 하루 만에 내렸다. 시민들의 질타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정부·정치권의 지나친 반일 행보를 호되게 비판했다. 시민사회는 'NO 재팬'이 아니라 'NO 아베'로 선을 그었다. 그래야 극일(克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명한 전략이다. 우리의 투쟁 대상은 일본 국민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 극우집단이다. 쇼비니즘(chauvinism·배타적 애국주의)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일본 국민을 배척하면 국제사회와 세계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또한 아베 정권을 끌어내리는 힘(투표권)은 일본 국민에게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에서도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들은 지난 8일 참의원회관에서 집회를 열고 '평화에 역행하는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정책에 항의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앞서 4일에는 도쿄 신주쿠역 앞에서 일본 시민들이 모여 '아베 정권 타도'를 외쳤다. 트위터에선 '#좋아요_한국' 등의 해시태그를 게재하는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의 저명인사들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촉구하며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들은 '반(反)아베 공동전선'을 형성하기도 했다. 양국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15일(광복절) 서울에서 '국제평화행진'을 한다.

일본의 양심 세력이 일본에서 영향력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한국 시민사회는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일본은 국제분업과 자유무역질서를 위배했다. 더욱이 식민지배 역사의 잘못을 부정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 정부에 공존공영과 호혜 협력 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인류의 보편 가치이며, 국제규범이다. 우리는 자신감을 갖고 우호적인 국제여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시민사회의 책무는 막중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