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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골목, 멈춰진 시간

이정호 국악작곡가

이정호 국악작곡가
이정호 국악작곡가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직선거리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일제저항 민족시인이며 자주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1944) 시인이 1920년부터 한동안 살았던 집 터가 있다. 그 작은 골목 곳곳을 거닐고 있으면 마치 그 시절 멈춰진 시간 속에 있는 듯한데, 좁은 길이 여러 갈래로 나있고 오래된 주택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오목조목 붙어 있으니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정이 가득한 곳, 따뜻한 골목을 걸으며 이육사의 숨결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도 잠시, 곧 주택 곳곳에 빨간 페인트로 철거라고 적혀 있는 길이 나왔다.

최근 이 주변이 아파트재개발지역으로 설정되어 곧 철거될 예정이라 그러한 것인데, 어느덧 사람도 다 떠나고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아 더욱 그러한 느낌이 많이 든다. 이육사 생가터도 재개발계획에 따라 같이 철거된다고 하니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파트가 들어서고 나면 그 부지 안에 이육사기념관이 건립될 예정이라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이는 여러 시민단체들이 목소리를 내준 덕분인데, 다만 공유지에 따로 새워지지 못해 대구시 차원에서 기념관을 관리할 수 없고 아파트 사유지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쉽다는 의견도 많다. 앞으로도 논의가 계속 진행될 것이니 여러 의견수렴 및 구상을 통해 대구시에서 최선의 결정을 할 것으로 믿는다. 그 과정이 어찌 되었든 이육사기념관이 건립되어 대구시민들에게 이육사의 저항정신을 알리고 그 얼을 기린다는 것이 반갑고, 또 근처에 있는 근대골목과도 연계되어 대구를 대표하는 좋은 명소가 되리라는 기대도 된다.

이육사는 40년 일생 중 청년기 이후부터 17년이라는 긴 시간을 대구에 살면서 한때 약령시 약전골목에 일하기도 하였고, 후에 기자생활도 8년 동안 하면서 일제의 부당함을 알리는 기사와 평론을 수차례 발표했다. 또한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에도 가입해 무장독립투쟁에도 헌신하였는데,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는 것을 시작으로 대구 격문사건 등 여러 항일운동으로 수차례 체포 구금되었지만, 그 가운데 시를 발표하며 문인으로서도 민족의 얼을 지켰다. 1944년 베이징의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옥사하기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끝까지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다.

나의 곡 합창을 위한 국악관현악 '초인'이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지난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초연되었다. (연주:대구시립국악단, 지휘:이현창, 합창:메트로합창단) 합창가사는 이육사의 '광야(曠野)', '교목(喬木)', '절정(絶頂)' 이 3개의 시에 선율을 입혔다. 광야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 곡은 올 연말에 대구시립국악단 송년음악회에 다시 한번 연주될 예정이다.

이정호 국악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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