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훈민정음 상주본 반환 더 늦추면 안된다

상주의 고등학생들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반환을 위한 서명운동에 나섰다. 학생들은 "훈민정음 상주본 공개 문제가 어른들만의 일이 아니다"며 이를 전 국민 운동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상주본을 둘러싼 오랜 논란 끝에 그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는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는데도 행방조차 찾지 못한 어른들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2008년 상주에서 발견되면서 '상주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판본은 세종이 직접 쓴 서문에 해설이 붙어 있어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른다. 한글 창제의 동기와 의미는 물론 사용법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이 때문에 같은 판본으로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간송본보다도 학술적 가치가 훨씬 높다는 평가이다.

그러나 이미 대법원 판결과 원소유자의 기증 절차를 거쳐 국가 소유가 확정된 문화재가 한 개인의 터무니없는 소유권 주장으로 행방조차 묘연하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세계적인 유산이 무단으로 방치되고 있는데, 이렇다 할 대책도 없이 시간만 끌고 있는 문화재 당국도 답답한 노릇이고, 1천억원 운운하며 소중한 문화재를 담보로 돈타령을 하고 있는 배익기 씨도 딱한 사람이다.

문화재청은 배 씨를 만나 상주본 반환을 거부할 경우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통보는 했다고 한다. 그래도 배 씨는 배짱으로 일관하며 상주본의 소재지에 대해선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문제는 상주본의 보존 상태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훼손과 분실 등이 우려된다. 어떻게 보면 현재로서는 상주본이 실제 존재하는지조차도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문화재청은 배 씨를 상대로 명예 회복과 적절한 보상 등을 포함한 다각적인 방법을 다 고려해서 다시 한 번 설득 작업을 벌여야 한다.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없다면 가능한 한 모든 공권력을 동원해야 한다. 학생들이 염원하는 것처럼 상주본이 더 훼손되기 전에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국민적 관심의 대상인 문화재를 불법 부당하게 은닉하는 것을 계속 좌시한다면 더 이상 법치국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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