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를 전후해 조선과 사할린에서 살았던 한 사람이 남긴 기록으로 책의 부제가 '산 속에서 쓴 보름간의 일기'(山中半月記)다. 한문체가 많아 다시 한글로 옮겨 펴냈다.
'산중반월기'는 2006년도 사할린 강제동원의 일면과 그 비극적 파장을 보여주는 증거 자료로 판단돼 정부가 발행한 첫 사할린 강제 동원 관련 구술집인 '검은 대륙으로 끌려간 조선인들' 속에 영인돼 출판된 바가 있다. 하지만 출판물이 정부 간행물이어서 배포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한자가 거의 절반에 육박하고 한시와 자작시도 많이 인용돼 있었다.
사실 1920년대 조선에서 태어난 사람들치고 인간적 행복을 누렸던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차 없은 운명의 폭풍 속에 스러진 사람들의 눈물에 대한 기록은 너무 적다.
지은이도 사할린 한인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글을 읽노라면 일본어와 러시아어 표현은 물론 북한을 한국보다 비교 우위에 놓은 듯한 부분도 있다. 이 점이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의 시각에서 다소 불편한 느낌을 줄 수도 있으나, 하지만 지은이가 1950년대에, 그것도 한국 사정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소식과 소비에트 체제가 일방적으로 전하던 정보만 접한 채 썼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래서 지은이는 책머리 '자서'(自序)에서 말하길 "이 일기는 1957년 9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보름간 크라스노고르스크 임산 사업소 직속인 임동화 브리가다(작업반을 뜻하는 러시아어)가 새풀(억새)치러 가는 곳에 밥을 해주는 사람으로 따라가 쓴 일기"라며 "그저 붓끝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쓴 글이기 때문에 일정한 계통도 없으며 흐름도 순조롭지 못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은 혹독한 시대를 맞은 지식인의 고뇌와 삶의 팍팍함을 엿보기에 부족하지 않다. 지은이는 이 책외에도 '조선문전'이라는 조선어 관련 저서도 남겼다.
143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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