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를 하다보면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는 환자를 종종 본다. 특히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 통증을 가진 환자들에게서 이런 경우를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다. 통증의 원인이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는 급성 통증과는 달리, 만성 통증은 원인이 모호하고 여러 가지 요인이 많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치료가 용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만성 통증 환자는 같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환자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하나 하나 파악해 나가는 것이 치료의 중요한 키포인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성 통증 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의사 쇼핑'은 일차적으로 환자에게 적절한 진료가 제공될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됨으로써 치료가 지연되고 환자가 느끼는 신체적, 심리적 고통이 가중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국가적으로도 동일한 병상으로 여러 병원에서 중복 진료를 받음으로써 국민건강보험 재정 낭비를 초래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더군다나 양방과 한방으로 이원화된 의료체계를 가지고 있고, 의료인 사이에 의료정보의 공유와 협진제도가 미흡한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은 이런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면, 환자들이 왜 여러 병원을 찾아 다니게 되는 것일까? 물론 저렴한 의료비, 동일 병상에 대한 중복 진료의 무제한적 허용, 의료전달체계의 미흡과 제한 없는 의료기관 접근성 등과 같은 제도적 요인이 환자의 이러한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보다는 의사의 설명 부족과 의사에 대한 신뢰감 부족이 더욱 중요한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만성 통증 환자를 진찰할 때는 환자와의 대화와 설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하지만, 의사의 진료 자율권에 많은 제약이 가해져 있는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 하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의사에 대한 신뢰감 부족이 비록 의료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불신풍조와도 깊은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2016년 OECD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신뢰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바닥권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한국은 26.6%만이 그렇다고 응답해 전체 35개 국가 중 에서 23위를 차지했다. 덴마크가 74.9%로 사회신뢰도 순위가 가장 높았고, 노르웨이 72.9%(2위), 네덜란드 67.4%(3위) 순이었다. 일본은 38.8%(13위), 미국은 35.1%(17위)로 나타났다. 사회적 신뢰도의 또 다른 지표인 사회자본 지수도 한국은 5.07점(10점 만점)으로 전체 32개국 중 29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2017년 성균관대 SSK 위험커뮤니케이션연구단이 실시한 '한국사회 신뢰도' 조사에서도 '사건·사고/재난·재해 등 위험 상황이 발생하였을 경우 누구의 도움을 기대하는가?'라는 질문에 가족에 대한 기대치가 가장 높았고 전문가, 언론, 정부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낮게 나타남으로써 한국 사회가 심각한 불신시대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불신풍조가 최근에 더욱 악화되고 있어서 공동체 와해의 위기감마저 느낀다는 것이다. 청년실업, 빈부격차, 이념대립, 지역감정과 같은 국내적 갈등 요소에 더해서 요즘은 이웃 국가와의 갈등과 외교적 고립, 경제적 어려움까지 가중되어 우리의 삶에 여유가 없어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더욱 고갈되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최재갑 경북대 치대 구강내과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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