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 마 안타깝네, 이미 다 지난 세월! 已去光陰吾所惜(이거광음오소석)
그대야 무슨 걱정, 지금 하면 되는 것을 當前功力子何傷(당전공력자하상)
쌓고 또 쌓아서 저 높은 산 될 때까지 但從一簣爲山日(단종일궤위산일)
어영부영하지 말게, 급하게도 굴지 말고 莫自因循莫太忙(막자인순막태망)
1564년. 퇴계 이황(李滉:1501-1570)도 나이가 어언 예순 넷에 이르고 있었다. 그 무렵 퇴계는 벼슬에서 물러나와 안동의 낙동강 가에다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우주와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제자 김취려(金就礪:1539-?)가 서당으로 찾아와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3수의 시를 지어 퇴계에게 바쳤다. 퇴계도 역시 그의 시에다 맞장구질 친 3수의 시를 지어 그에게 주었다. 위의 작품은 그 가운데 하나다.
예순 넷이면 그 당시로서는 꽤 많은 나이다. 저승사자가 대문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얼핏얼핏 보이는 시점이다. 그러므로 퇴계로서도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 없을 수가 없었을 터다. 그 무렵 그는 학자로서의 마지막 열정을 온통 공부에 쏟아 붓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이미 많은데다, 타고 난 몸이 쇠약했던 그에게는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당연히 퇴계는 마음에도 없는 벼슬살이 때문에 그 많은 시간들을 헛되이 보낸 데 대해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자 김취려는 나이가 이제 겨우 스물여섯 살에 불과하였던 푸른 피가 펄펄 뛰는 젊은이였다. 그러므로 조금씩, 조금씩 쌓기만 하면 얼마든지 높고도 큰 산이 될 수 있을 터였다. 이 시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쓰는 반성문이자 제자에게 보내는 격려 편지다. "제자야, 제자야. 내 나이 벌써 예순 넷이다. 금 쪽 보다도 훨씬 더 귀한 그 기나긴 시간들을 다 보내고, 지금 와서 이렇게 한탄하고 있단다. 제자야, 제자야. 너는 아직도 스물여섯의 꽃다운 나이. 쉬지 않고 꾸준히 가기만 하면 목표가 너에게로 다가온단다. 가기 싫다고 어영부영 주저앉아 있지도 말고, 의욕만 앞서서 지나치게 성급하게 굴지도 말아라. 급하게 굴면, 사흘 갈 길을 하루 만에 후닥닥 내달려간 뒤에, 열흘 동안이나 드러누워 끙끙 앓게 된단다."
문득 생각하니 내 나이가 올해 예순 다섯! 퇴계보다 오히려 한 살이 더 많네. 내년이면 정년퇴직이고. 퇴계가 삶을 '한탄'했다면, 나는 콘크리트를 이마로 쿵쿵 치며 대성통곡해도 시원찮겠네. 하지만 제자들아. 그대들은 아직도 꽃다운 스물, 푸른 피 펄펄 뛰는 나이가 아니냐.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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