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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에 얽힌 이야기 <18> 슈만의 부인을 사랑한 브람스

브람스(맨 왼쪽)가 사랑한 클라라(가운데),클라라의 남편인 슈만.
브람스(맨 왼쪽)가 사랑한 클라라(가운데),클라라의 남편인 슈만.

서양음악사의 대표적인 사랑 이야기로 슈만과 클라라 부부, 그리고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법을 공부하다 피아니스로 방향을 튼 슈만은 당대 최고 실력자 비크 교수의 제자가 되었다가 그의 딸 클라라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클라라는 어린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린 반면 슈만은 과도한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쳐 연주자로 성공 가능성이 사라진 상태였다. 게다가 클라라보다 9살이나 많았다. 당연히 비크 교수는 둘의 결혼을 반대했고, 슈만은 스승을 상대로 소송을 불사한 끝에야 클라라와 결혼할 수 있었다. 결혼 이후 슈만은 작곡자와 평론가로, 클라라는 슈만의 아내와 아이의 엄마로 살았다.

브람스는 1853년 슈만 부부를 알게 되었다. 브람스는 슈만을 존경하면서도 그의 아내인 클라라를 짝사랑했다. 클라라가 14살 연상이였지만 브람스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슈만이 1854년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브람스는 클라라와 아이들을 돌보며 연모의 정은 깊어갔다.

1856년 슈만은 세상을 떠났다. 슈만 떠난 이후에도 브람스가 바라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클라라는 브람스의 짝사랑을 알면서도 피아니스트로, 그리고 작곡가로 살면서 정절을 지켰다. 클라라는 슈만과의 변치 않은 사랑을 위해 언제나 검은 연주복을 입었고, 첫 곡은 슈만의 곡으로 시작했다. 브람스는 그러한 그녀를 묵묵히 바라만 봤다. 브람스는 클라라와 7명의 자녀를 위해 도움이 되려 했으며 많은 후원을 하려고 노력했다.

한때 브람스는 아가테라는 여성과 약혼한 적도 있지만, 파혼했다. 브람스는 아가테와 헤어지고 현악 6중주 1번을 작곡했다. 특히 2악장은 '브람스의 눈물'이라 할 만큼 애절한 선율로 구성돼 있다. 브람스는 2악장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클라라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브람스와 클라라는 슈만 사후 40년 동안 늘 남들의 의심어린 눈길을 받았지만 연인 관계를 공식화한 적은 없었다.클라라 때문인지는 몰라도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1896년 클라라 사망 후 건강이 나빠져 이 듬해인 1897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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