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보고서

나치에 압류당한 여인의 초상화
끈질긴 소송으로 개인이 되찾아
반출 문화재 환수 유네스코 협약
협약 이전 사안 소급 안돼 아쉬움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 핀란드대사/국제법 박사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 핀란드대사/국제법 박사

주말에 넷플릭스를 이용,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봤다. 필자가 좋아하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서 TV를 켜자마자 바로 몰입되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둘러싼 사건이 나의 중견 외교관 시절 추억이 서린 비엔나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사건 전개 과정에서 펼쳐지는 법리 논쟁, 그것도 약탈 문화재 반환에 관한 문제는 필자가 줄곧 관심을 갖고 지켜봐 온 이슈 중 하나다.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주인공인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 분)의 삼촌인 페르디난트가 클림트에게 부탁하여 그린 부인 아델레의 초상화이다. 찬란한 황금빛 드레스를 입은 갸름한 얼굴의 여인을 그린 이 초상화는 1938년 나치에 의하여 압류당한다. 나치는 1941년 이 그림을 비엔나에 있는 벨베데르궁으로 옮기고, 그림의 주인공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그림 제목을 'Woman in Gold'로 바꾼다. 바로 영화 제목이다.

한편, 페르디난트는 모든 재산을 유일한 혈육인 질녀에게 넘긴다는 유언을 남기고 1945년 사망한다. 영화는 나치의 점령에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망명한 마리아가 나치에게 빼앗긴 그림을 되찾아 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그림 시가가 1억달러에 달한다는 것을 알고 사건에 뛰어들었던 신출내기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 분)는 비엔나에서 자신의 증조부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다는 것을 알고는 돈을 떠나 그림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소명 의식을 느낀다. 랜디와 마리아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나치 약탈 예술품 반환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설치한 반환위원회에 그림 반환을 요청하지만, 위원회는 아델레가 그림을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에 기증하도록 유언을 남겼다며 반환 불허를 결정한다. 랜디는 그림의 소유자는 아델레가 아닌 페르디난트이기 때문에 아델레는 그림을 기증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뉴욕으로 돌아온 랜디는 어느 날 책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클림트 화보를 발견하고는 환호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미국의 주권면제법(FSIA)이다. 주권면제법은 원칙적으로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허용하지 않는다. 단, 외국 정부기관이 미국 내에서 영리행위를 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이와 관련된 소송은 허용된다. 화보 판매를 영리행위로 판단한 랜디는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미 연방법원에 그림 반환 소송을 제기한다. 오스트리아 측은 1976년 제정된 주권면제법은 동 사건에 소급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미 법원은 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 대법원은 동 법은 기존 국제법을 성문화한 것이기 때문에 소급 적용이 아니라며 오스트리아 측 주장을 배척한다. 재판 과정에서 양측은 미 국내 법원보다 중재를 통하여 사건을 해결하기로 합의한다. 중재재판소는 2006년 마리아 측의 손을 들어주고, 결국 그림은 벨베데르궁을 떠나 마리아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사건은 한 개인이 외국 정부기관이 소유한 나치의 약탈 문화재를 되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사건이 '약탈 문화재는 원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양시키는 데 기여한 면은 있겠지만, 많은 이가 관심을 갖고 있는 2차대전 이전 반출 문화재 환수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 우선, 이 사건 대상물 자체가 반출 문화재가 아니다. 이 분야 국제조약으로는 '문화재 불법 수출입 및 소유권 이전 금지에 관한 UNESCO 협약'과 '도난 및 불법 반출 문화재에 관한 UNIDROIT(사법통일국제협회) 협약'이 있으나, 두 협약 모두 협약이 채택되기 이전 발생한 사안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우먼 인 골드'를 보고 고무되었던 많은 이들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법의 현실이다. 언젠가는 이 실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도록 국제법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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