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조국의 길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조선 중기의 유학자 남명 조식(曺植)은 퇴계 이황과 더불어 사화(士禍)로 얼룩진 16세기의 위기와 혼돈을 사상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 정신사의 거목이었다. 이 위대한 사상가로 인해 유교가 유례없는 혁명적 실천 기능을 담당할 수 있었다.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는 민암부(民巖賦)의 설파에서 남명은 민중적 지식인의 풍모까지 내비친다.

남명은 협객의 이미지도 지녔다. 실제로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內明者敬 外斷者義)라는 글귀를 새긴 칼을 차고 다녔다. 벼슬을 사양하며 올린 '을묘사직소'에서도 조정의 실정을 준엄하게 통박하며 청고한 선비의 기개를 드러냈다. 남명의 유학 정신은 개방적이고 역동적이었다. 불교와 노장사상을 포용했으며, 제자들에게 병법과 천문, 지리, 의학 등 실용 학문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가르쳤다.

그의 문하에서 임진왜란 때 많은 의병장이 나오고 광해군 정권에서 현실 정치에 참여한 것은 '앙가주망'에 다름 아니었다. 남명의 유교는 실천철학이요 마음의 철학이었다. 외부 세계의 변혁과 함께 자신의 혁신에도 주목했다. 남명의 정신은 현대의 지식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앙가주망은 문중의 선조인 남명 조식과는 많이 다른 듯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규정한 앙가주망도 지식인의 사회참여이긴 했지만, 권력에 편승해 감투와 권세를 얻거나 사익을 챙기는 길은 아니었다. 앙가주망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고뇌이며 불의에 맞서 진실을 설파하는 지식인의 도덕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리페서를 비난했던 조국 후보자는 서울대생들이 뽑은 가장 부끄러운 동문 투표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벼슬길에 나선 후 그의 언행은 지성적이기보다는 선동가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죽창가로 애먼 국민을 분열시키고 친일파로 갈라치기 하고 있다. 할 말이 없으면 "맞으면서 가겠다"고 한다. 조국(曺國) 뜻대로 가다간 좌국(左國)이 될 것이라는 비아냥과 함께 조국(弔國)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상한 소송과 투자 의혹까지 받고 있는 강남좌파의 길에 앙가주망이 웬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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