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 중국에서는 황제가 자신에게 반항하는 인물을 숙청하기 위한 방법으로 '문자의 옥(獄)'이 자주 이용됐다. 문자의 옥이란 책이나 문서에 적힌 내용이나 글자를 파자(破字)해 황제를 비판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으로, 명의 홍무(洪武)제와 청의 강희(康熙)·옹정(雍正)·건륭(乾隆)제 때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그중 하나가 옹정제 때인 1726년에 터진 '사사정'(査嗣庭) 사건이다. 한족(漢族)으로 강서성 주시험관을 맡은 사사정이 시험 문제에 '유민소지'(維民所止)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방기천리 유민소지(邦畿千里 維民所止, 나라의 도읍 사방 천 리는 백성이 멈추어 사는 곳이다)에서 따온 것으로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 문구의 '維'와 '止'는 옹정(雍正)에서 윗변 'ㅗ'와 '一'을 의도적으로 걷어낸 것으로, 옹정제의 참수를 의미한다고 해석되면서 피바람이 불었다. 고문을 받다 자살한 사사정은 잠시 땅에 묻혔다가 부관참시됐고, 그의 가족 중 16세 이상 남자는 모조리 참수됐다. 일본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아들 히데요리(秀頼)를 제거하려고 꾸민 '호코지 종명'(方廣寺 鐘名) 사건이다.
히데요리는 도쿠가와의 건의로 호코지를 재건하면서 범종(梵鐘)도 만들었는데 거기에 '국가안강 군신풍락'(國家安康 君臣豊樂)이란 문구를 새겼다. 너무도 좋은 의미였지만 도쿠가와는 자신의 이름을 '安'자를 이용해 두 글자로 쪼개고, '臣'과 '豊'을 이어놓아 도요토미 가문의 번영을 기원하고 도쿠가와 가문에 저주를 거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말하자면 일본판 '문자의 옥'을 벌인 것이다.
홍콩 최고 갑부인 리카싱(李嘉誠)이 홍콩 시위와 관련해 홍콩 언론에 게재한 광고에 숨은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표면적인 메시지는 '폭력 시위는 안 된다'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의미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광고를 둘러싸고 있는 문구를 좌우로 오가며 각 문구의 끝 글자를 모으면 '홍콩 사태의 책임은 국가(중국)에 있다. 홍콩 자치를 용인하라'(因果由國, 容港治己)가 된다는 것이다. 표의문자인 한자에서만 가능한 해석의 기예다. 이런 해석이 빌미가 돼 홍콩판 문자의 옥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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