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하 시인의 첫 시집 '저문 바다에 길을 물어'는 우연한 기회로 내게 왔다. 어느 날 제자가 사촌 형님이 시집을 냈다며 건넸다. 제자가 준 시집이었기에 거창하지는 않아도 작은 코멘트라도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숙제하는 자세로 시집을 펼쳤다. 그러나 한 편, 한 편의 시를 읽어나가면서 주위의 소음이 일시적으로 '소거'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분명 '슬픔'의 감성을 실타래 풀 듯 한 올 한 올 풀어나가고 있지만 도피가 아니라 그러한 현실을 끌어안고 '자신'을 이겨내는 상생적 시인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집은 슬픔의 계보를 바탕으로 독자로서 자발적 반응을 유도한다. 발화되고 있는 시적 언어들은 탐험적인 태도를 가지게 한다. 이러한 태도는 작가의 관점에서, 작품의 관점에서, 독자의 관점에서 활발한 언어적 의사소통을 경험하게 한다. 물론, 레이먼 셀던의 말처럼 "어느 한 시가 지니고 있는 복잡성은 삶에 대한 미묘한 반응을 형상화하고 있어 논리적 기술이나 의역으로는 도저히 요약할 수는 없다". 그러나 깨닫게 된다. 그의 시들은 '슬픔'을 기저로 인본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결이 다른 '슬픔'을 보여주며 '슬픔'에 예의를 지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첫 장을 시인은 '허균- 누이를 생각하며'로 열고 있다. "누이가 매어둔 목란배 보이지 않고 시든 연꽃잎만 흐드러진 호수를 따라 걸으며 누이의 부활을 꿈꾼다."처럼 불행한 삶을 시로 극복하고자 했던 허난설헌을 슬픔의 파트너로 불러내어 자신의 상처를 다스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어서 누이, 어머니, 할머니, 아버지를 불러내어 "살결이 일면 묻어두어야 할 그리움"(억새풀2)으로 그들의 삶의 노곤함과 애잔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살수록 늪이 되는 수렁의 바닥"인 삶에서 "막장보다 깊은 절망을 앓던 얼굴들 풀씨 몇 개로 떠돌던 이웃들이 지워지고" 있지만 "다시 탱자 빛 불빛 하나 떠오른다."(화전리의 불꽃) 며 '슬픔'에 대해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시인의 태도는 '매콩강의 노래'에서 '슬픔'의 사슬을 벗고 '희망' 으로 승화되어 나타난다.
나의 시는 망고처럼 달콤하지 않지만
두꺼운 침묵을 싸고 자라나는 코코넛 열매들
코코넛 열매가 뿌리로 빨아올린 단단한 생각들,
과즙처럼 시원한 노래를 부르고 싶네
매콩강 낮은 강물 소리 따라 흘러가고 싶네.
김승하 시인은 시를 쓴 지 38년 만에 첫 시집을 냈다. 시인에게 있어 시란 "삶이 힘들고 어려워졌을 때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던 내 삶의 버팀목이자 자존심이었다." 그가 이 시집을 내기까지 긴 시간을 고뇌했을 거라는 느낌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삶과 내면에 드리워진 깊은 슬픔을 거부하지 않고, 무시하지도 않고 껴안고 보듬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슬프다는 느낌은 떨칠 수가 없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슬픔 속에는 연금술의 마법 같은 편안한 '위로'가 있다.
이 시집은 내게 있어 치유와 같은 존재이다. 일상의 어둠에 지쳐있을 때 그의 시를 읽으면 슬픔에 더 함몰되면서도 그 슬픔들을 속속들이 어루만져 주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슬픔 속에서 슬픔에 위로를 받고 싶다면 이 시집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최중녀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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