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호가 있어서 남편과 울고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추억이 많은데…"
지호(13·가명)는 첫돌이 지나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뇌전증의 일종인 병을 치르면서 여러가지 장애를 앓는 아들이었지만 박신혜(47·가명) 씨와 남편은 정성으로 아들을 보살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나며 박 씨와 지호는 길바닥에 나앉을 형편이됐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막막한 상황에 박 씨는 남편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 뇌전증 진단, 인공호흡기 없으면 숨도 못 셔
지호가 앓는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은 은 보통 만 1세에서 8세 소아기에 나타나는 중증 뇌전증이다. 여러 형태의 경련, 인지 기능 저하 등 발달 부전, 행동장애 등이 나타난다.
박 씨는 "지호의 경우 병의 원인이 뚜렷하지 않고 다른 환아처럼 뇌손상이 크지 않은 것도 특이하다"며 "돌 전까지도 가끔 미세한 경련증세를 보였지만 병원에 가도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 미처 몰랐다"고 했다.
박 씨 부부는 13년간 누워있는 지호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3월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이후 지호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입으로 음식을 받아먹던 아이가 갑자기 곡기를 끊고 숨을 못쉬게 된 것이다.
이후 지호는 2년이 넘도록 위류관을 통해 위로 바로 영양분을 주입하고 있다. 상태는 계속 나빠져 지난해 9월에는 제한성 폐질환으로 기도를 절개하고 호흡관을 삽입해야 했다. 박 씨는 "지호가 수술을 하고서도 계속 피를 토하고 징후가 너무 안 좋아 크게 걱정했지만 다행히 잘 견뎌내 올 2월부터는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이어진 병 간호에 엄마의 허리와 목 관절은 엉망이 됐다. 박 씨는 갑상선암 수술을 거친데다 만성적인 목 디스크와 척추분리증, 최근에는 공황장애까지 얻었다. 시도때도 없이 떨어지는 지호의 맥박과 호흡에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는 탓이다. 지난 한 해 박 씨가 지호를 데리고 병원을 방문한 횟수만 100회가 넘을 정도다.
◆ 5만 4천 원 남기고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남편
섬유사업을 했던 남편은 여느 날처럼 퇴근하고 잠이 들어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뇌출혈 진단을 받고 2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1주일도 안 돼 세상을 떠났다.
15년을 연애 끝에 결혼한 8살 연상의 남편은 아내가 걱정할 까봐 어려운 일이 있어도 "돈 걱정하지 말고 지호만 잘 돌보라"고만 했다.
그런 남편이 사라져 버리자 세상은 지옥으로 변했다. 항상 친근하기만 하던 남편의 동업자들은 그의 장례식장도 찾지 않은 채 돌아서 버렸다. 남편이 쓰러지기 전날에도 얼굴을 봤고 남편에게 밀린 대금도 많던 사람들이다.
공장을 같이 운영한 남편의 친구를 찾아가 처절하게 매달려도 항상 '줄 것 다 줬다'는 말만 돌아왔다. 남편이 사업하면서 평생 습관처럼 모아뒀던 각종 일지와, 서류도 귀신처럼 증발해버렸다. 결국, 남편이 남긴 것은 바지 주머니 안에 있던 5만 4천 원이 전부였다.
박 씨는 남편 떠난 뒤 줄곧 친오빠 집에 얹혀살다 최근 2개월은 미혼인 친남동생 집에 머물고 있다. 수입의 전부인 기초생활수급금 80만원으로는 월셋방 한 칸 얻기도 어려운 탓이다.
그는 "남편 사무실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아직도 믿을 수 없다. 그는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단 1분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왜 그렇게 아무것도 안 알려주고 급하게 떠나야했는지 한번 물어보고싶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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