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월의 흔적]<36>선풍기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올 여름도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로 일상이 무척 고단하였다. 식욕이 떨어지는가 하면 잠을 설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처서가 지나자, 계절의 순환 이치를 거스를 수 없는지 한풀 꺾였다. 선풍기도 거실 구석으로 밀려나 한가하게 쉬고 있다. 소임을 잃은 선풍기의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제가 차지한 구석자리조차 염치없다는 듯 움츠리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거실 한가운데 당당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는데. 식구들은 다들 선풍기의 위치를 존중하였고, 유난스러운 무더위에 온종일 쉬지 않고 바람개비를 돌렸다. 저녁나절에 모터가 들어 있는 머리에 손을 대보면 뜨거웠다. 얼음물에 적신 타월을 올려놓기도 하였다. 우리의 더위를 식혀 주느라 정작 제 몸은 열이 나서 죽을 지경이었으리라.

우리 집에 선풍기를 처음 들여놓은 것은 1970년대 초반쯤이었다. 그때는 선풍기가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어른들을 모시고 한집에서 사는 처지라 여름 나기가 무척 힘들었다. 어느 날 아내에게 선풍기를 하나 사자고 하였더니, "선풍기는 무슨 선풍기예요. 더우면 부채질하면 되지." 하면서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즈음 첫아이가 태어났고, 갓 태어난 아이가 땀띠로 고생하던 참이었다. 어렵사리 선풍기를 들여놓았고, 갓난것의 발치에다 선풍기를 미풍으로 틀어 놓았다. 시원해서인지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내면서 잠든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아내와 마주보며 웃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동안 몇 차례 이사를 다녔다. 그러다가 새집을 지어 옮기면서 거실에 에어컨을 들여 놓았다. 그러나 내 체질에 맞지 않아서 좀체 가동하지 않는다. 에어컨 바람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 병원에 드나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선풍기를 여러 대 들여놓았다. 방마다 한 대꼴로 놓여 있는데, 모두가 2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오래된 것들이다.

우리나라의 선풍기 제작 기술은 가히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외국제품을 모방하여 생산하다가, 1970년에 접어들며 모터와 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전국적으로 널리 보급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외국으로의 수출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수출 실적이 크게 늘어나 총생산량의 80퍼센트를 넘어선 적도 있었다.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요즈음 출시되는 제품들을 살펴보면 모양이나 기능이 크게 향상되었다. 바람의 세기를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는 것, 취침을 위한 자연풍과 대류를 겸할 수 있는 것, 타이머를 부착하여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전기가 차단되는 것,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것, 심지어 바람개비가 없는 것도 있다. 그러나 생활수준의 향상과 에어컨 제작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선풍기의 수요가 차츰 줄어들고 있다.

이제 아내는 "선풍기를 치우라"고 할 것이다. 그 말은 선풍기를 해체하여 바람개비며 몸체의 먼지를 닦아내고 손질해서, 비닐을 씌워 다용도실에 잘 모셔두라는 뜻이다. 그 같은 조처는 선풍기에 대한 예우일까, 아니면 내년에 또 써먹기 위한 욕심일까. 어쨌든 우리 집 선풍기는 모두 '골동품' 소리를 듣는 구닥다리다. 안쓰럽다.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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