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월의 흔적] <37> 멋·풍류 즐기는 옛 선조 여름 필수품…부채

합죽선
합죽선

'단오 선물로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 하였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단오가 가까워지면 곧 여름철이 되므로 친지나 웃어른께 부채를 선물하고, 동지가 가까워 오면 새해 책력을 선물하던 풍속이 성행하였다. 그리고 부채를 생산하는 고을의 수령들도 궁중에 진상하거나 각처에 선사하던 풍속이 있었다. 그 가운데 전주와 남평에서 만든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쳐주었다.

부채란 '부치는 채'라는 뜻인데, 크게 나누어 두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부챗살에 비단 또는 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 모양의 부채인데, 다른 말로 '방구 부채'라고도 한다. 다른 하나는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부챗살에 종이를 붙여 만든 것으로, '접부채'라고도 한다. 합죽선․단절선․화선․무선․무당부채 등이 있다. 그밖에 '별선'이라는 특별한 부채가 있었는데, 특별히 잘 만든 부채를 두고 이르던 말이었다.

글자만 보아서는 부채의 이름 같으나 실상은 부채가 아닌 것이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사선(紗扇)․포선(布扇)․피선(皮扇)을 두고 이르는 말인데, 조선말기까지 양반들의 낯 가리개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양반들이 길을 갈 때나 말을 탈 때, 상복을 입고 바깥나들이를 할 때, 또는 장례 때 상복을 입은 사람이 가지고 다니며 사용하였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 집에 말을 타고 갈 때 얼굴을 가리고 가는 풍속이 있었는데, 그때 사용하던 가리개를 낭선(郎扇)이라 하였다.

태극선
태극선

내게 있어서 부채는 단순히 더위를 쫓는 도구가 아니다. 몇 자루의 합죽선을 가지고 있는데, 이름난 서예가가 난이며 죽을 치고 화제를 곁들였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존해 있는 사람도 있다. 지난날 함께 어울려 청담방담을 나누던 사이다. 그들의 흔적이 곁에 남아 있어서 좋고, 인연을 떠올려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가끔 접었다 폈다 하면서 그들과의 인연을 되새겨보기도 한다.

LA올림픽 때의 이야기다. 우리네 부채 문화를 전 세계에 과시한 바 있다. 입장식 때 선수들이 태극선을 흔들며 장내를 한 바퀴 돌았다. 응원석에서도 태극선을 뒤흔들며 크게 환호하였고, 각국 선수들에게 선물로서도 인기가 높았다. 인상적이었다. 더욱이 청․홍․황의 삼색 태극은 천․지․인의 조화를 뜻한 것이기에 올림픽 정신을 적절하게 상징하고 있다.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나없이 부채를 널리 자랑할 일이다. 딸아이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학위를 받게 되었다. 지도교수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궁리하다가 합죽선이 떠올랐다. 마침 친구 가운데 화가가 있어서 그림을 받아 그 옆에다 내가 화제를 썼다. 고리에다 선추를 달고, 영어로 쓴 설명문과 함께 선물하였다.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였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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