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서 동틀 때까지, 친구·가족과 밤길 걸으며 생명의 소중함 느껴요."
지난 31일 대구 수성구 대구스타디움 동편광장은 5천500여명의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찾기 어려웠다. 'You are not alone, Stop suicide'(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자살을 멈추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시민들은 저마다 가족과 친구, 혹은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시작을 알리는 징이 울리고, 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출발선으로 모여들었다. 캄캄한 밤이었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서 함께 걸으니 두렵지 않았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이들도 곧 용기를 내 밤길을 뚫고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세계 자살 예방의 날(9월 10일)을 열흘 앞둔 이날 대구스타디움에서는 '2019 생명사랑 밤길걷기 캠페인'이 열렸다. 매일신문과 사회복지법인 대구생명의전화가 지역사회에 자살 문제의 심각성과 생명의 고귀함을 알리고자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올해 12회째를 맞았다.
참가자들은 사랑(10㎞)과 생명(34㎞)의 두 코스를 함께 걸으며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과거 한 차례 이상 참석했던 이들이 "삶의 의미를 느꼈다"며 가족 단위로 다시 참여하는 사례가 많았다.
고등학생 자녀와 3년째 참석 중이라는 김태경(59)·정미애(53) 씨 부부는 "아이들이 아직 생명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자존감이 흔들리는 시기에 참여해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오늘도 티셔츠에 '태어난 데는 이유가 있다', '존재의 이유를 위해'라는 표어를 붙이고 참석했다. 우리 모두 이런 의미를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10km 코스에 참여한 김기봉(47) 씨도 "어두운 밤길을 가족들과 함께 걸으면서 모처럼 딸아이들과 멋진 밤 풍경을 보고 벌레 소리를 들으며 삶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면서 "딸들도 가족들과 이런 시간을 갖기 힘든 만큼 생명과 가족의 가치를 알아가는 시간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밤길을 걷는 기쁨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학교 차원에서 단체로 참석한 학생들도 많았다. 경북 칠곡 왜관에서 45인승 버스를 타고 온 순심여중 학생들은 2012년 제5회 캠페인부터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최성헌(48) 순심여중 교사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참석하는데, 이번에는 34㎞ 코스에 도전한다. 우리 학생들이 힘들지만 뜻깊은 오늘 밤길걷기를 떠올리며 앞으로 어려운 시기가 닥쳤을 때 잘 이겨냈으면 한다"고 했다.
박효빈(16·순심여중 3년) 양도 "일부 학생들은 자살한다는 이야기를 장난처럼 하곤 하는데, 실제로 할 것도 아니면서 그런다는 걸 알지만, 희화화하지는 말았으면 한다"며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며 걷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이날 행사에는 삼성생명의 '생명사랑 포토존'과 한국타로교육협회의 '고민을 말해봐', 대구과학대 물리치료과의 물리치료실 등 다양한 부스가 마련돼 호응을 더했다.
이상택 매일신문사 사장은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밤길을 걷는 건 의미 있고 특별한 일"이라며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을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자"고 강조했다.
강석봉 사회복지법인 대구생명의전화 대표이사는 "우리나라 사망원인 5위가 자살이며, 하루 34.1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면서 "행사를 통해 함께 걷는 가족 혹은 친구들과 소통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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