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동 도루묵'은 퇴근길, 비가 추적추적 내리거나 사람 냄새가 그리울 때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고 싶은 때 생각나는 집이다. 지갑이 얇아도 괜찮고 아무런 준비없이 부담없이 들를 수 있는 선술집이다. 혼자가도 좋고 여럿이 가면 더 좋은 집이다. 왁자지껄 떠들면서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가 아닌 조촐하게 일상의 얘기들은 안주삼아 막걸리 한잔 마시는 곳이다.1961년에 창업해 60년이 다 돼 가는 이집은 큼직막한 놋사발에 따라주는 막걸리와 도루묵 안주를 잊지 못해 찾는 사람이 많다.

◆추억이 있는 집… 궂은 날엔 더 생각나
대구시 중구 남산동 남문시장네거리에서 향교쪽으로 100여m 가다가 오른쪽에 있는 이 집은 1961년 서금란(2007년 작고)이 창업했다. 시어머니에 이어 가게를 지키고 있는 정희숙 씨는 "시어머님이 먹고 살기 위해 창업했다. 길 건너에서 영업하다 2004년 지금의 이곳에 정착했다"고 설명했다.
가게 안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게 없다. 간판도 빛이 바랬다. 창업한 서금란 할머니의 사진과 함께 'SINCE 1961'이 적혀 있고 '남산동 도루묵'이란 글자도 빛이 바래 가까이 가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보일 정도다
50㎡ 남짓한 가게는 시어머니 때부터 도루묵을 구웠던 시커먼 솥뚜껑과 막걸리를 보관하는 술독, 탁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쪽 벽에는 도루묵과 관련한 글과 사진이 걸려 있다. 계산대 한쪽에는 술값을 계산하기 편하게 '1, 1천300원, 2. 2천600원, 10.1만3천원'이라고 쓰여져 있다. 희숙 씨는 "한 잔 1천300원, 두 잔을 마시면 2천600원인데, 술에 취한 손님이 계산이 어렵다고 하길래 쉽게 하기 위해 써 놓았다"며 빙그레 웃는다.
1961년 창업 당시 막걸리 한 사발 가격은 단돈 5원. 김치, 콩나물 등 기본안주에 도루묵구이도 공짜였다. "시인, 화가 등 가난한 예술가를 비롯해 인쇄공, 막노동꾼 등이 주손님이었는데, 안주 시켜먹을 돈이 없어 당시 값이 싼 도루묵을 구워주면서도 막걸리 값만 받았다고 시어머니께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술잔도 컸다. 대포(大匏)는 '큰 바가지'라는 뜻이다. '대포 한잔 어때?'라고 묻는 것은 '막걸리 한잔하자'는 말이다. 희숙 씨는 "지금도 다른 막걸리잔에 비해 크지만 옛날에는 '왕대폿잔'으로 불릴 만큼 더 컸다. 여기 오시는 분은 그 대폿잔을 못 잊고 오는 단골들"이라고 했다.
이집은 막걸리를 놋사발에 퍼 담아 잔술로 판다. 잔을 다 비울 때까지 시원한 냉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어 시어머니 때부터 사용하고 있다. 술을 더 주문할 때는 '사장님', '아줌마' 하고 부르는 대신 술잔을 젓가락으로 두들기는 게 이 집의 주도다. 술잔이 비면 젓가락으로 놋사발 잔을 '땡' 하고 울려 채워달라는 신호을 하면 한 사발 가득 부어 가져다 준다. 희숙 씨는 "건방져 보일까봐 '이모'하고 부르는 젊은 손님도 있다"고 했다.
막걸리는 처음부터 구수한 맛이 일품인 불로막걸리만을 사용한다. "알코올 도수가 6도인 불로막걸리는 전통곡주인 만큼 어떤 안주와도 잘 어울린다. 김치전 등은 물론 육류, 생선 등과도 궁합이 맞다"고 했다.
막걸리 값은 68년 10원, 77년 100원, 95년 1000원을 받다가 현재는 1천300원을 받는다.
상호도 처음에는 간판도 없이 그냥 '도루묵' 하다 72년 '도로모기'란 간판을 처음 달았다. 96년 '도로메기', 2004년 현재 자리로 옮기면서 '남산동 도루묵'로 자리를 잡았다.
김기동(가명·62) 씨는 40여 년 단골이라며 거의 매일 찾는다고 했다. 혼자 올 때도 있지만 이곳에 오면 아는 분들이 있어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를 마신다고 했다. "중고교 때부터 이곳을 찾았다. 근처에 살고 있어 들르기 편하고, 가격 부담없고, 한번 오면 대여섯 잔을 마신다고 했다. 오래도록 문을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했다. 막걸리 가격이 100원 할 때부터 이곳을 출입했다는 이동수(가명·61) 씨도 "70, 80년대에는 줄 서서 먹었다. 막걸리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자리를 내어주는 손님도 있었다. 막걸리 한잔 하다보면 옆 테이블에서 '한잔 하세요' 하며 동석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희숙 씨는 "이런 손님들 때문에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했다. 앞으로 계속 할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 가면 주문을 하지 않아도 놋사발에 담긴 막걸리와 기본 안주(콩나물'양배추 무침. 김치, 번데기, 강냉이 등)가 나온다. 손님 요구에 따라 도루묵구이를 비롯해 동태찌개, 양념 닭발, 어묵탕, 부추전. 닭똥집볶음, 돼지 껍데기 안주를 해준다.
이 집은 오전 11시 개점해 오후 10시에 문을 닫는다. 첫째, 셋째 일요일과 명절(추석, 설날)은 전날은 영업하고 명절과 다음 날은 휴무한다.
희숙 씨는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가끔 인터넷을 보고 찾는 손님도 있지만 대부분은 단골이거나 추억이 있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명절을 맞아 대구를 찾은 예전 단골들은 친구들과 이곳을 찾는다. 외국으로 이민간 이들 가운데 예전의 추억을 잊지 못해 찾는 손님도 있다"면서 "모두 '문 닫지 말고 오래오래 영업했으면 한다'는 당부를 한다"고 했다.

◆"막걸리 안주는 도루묵이 최고"
이집의 주 안주는 '도루묵'이다. 동태찌개, 양념 닭발, 어묵탕, 조기 구이, 부추전, 닭똥집볶음, 돼지 껍데기 등 안주 종류가 제법 되지만 여전히 도루묵구이를 넘어설 수 없다.
도루묵은 추억의 안주다. 가난했던 시절에도 도루묵은 웬만한 집에서 조차 상자째 먹을 수 있던 흔하디 흔한 생선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도루묵은 더 이상 공짜의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이집은 1961년 처음 영업할 당시에는 술을 시키면 값이 저렴했던 도루묵(도로메기)을 거저 주었다. 처음에는 연탄에 구웠다. 뒤집은 솥뚜껑에 돼지기름을 두르고 도루묵을 구워 알까지 씹어 먹으면 막걸리는 그냥 술술 먹어갔다. 도루묵 구이는 손가락을 쪽쪽 빨아가며 손에 들고 뜯어 먹어야 제맛이다.
공짜로 주던 도루묵 안주는 가격이 오르자 80년대 후반부터 한 접시에 3천원을 받았다. 2004년 6천원하다 지금은 도루묵 여섯일곱 마리에 9천원을 받는다. 겨울철 제철 때는 알배기 도루묵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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