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호의 새콤달콤 과학 레시피] 특명! 암세포에게 나노택배를 보내라

항암 치료약을 택배상자에 담아 암세포만을 치료하는 장면.
항암 치료약을 택배상자에 담아 암세포만을 치료하는 장면.

옛날 옛날에 어느 마을에 암에 걸린 사람이 세 사람 있었다. 그 세 명의 암환자를 치료하려고 비행기로 마을 전체에 약을 듬뿍 뿌렸다. 이렇게 여러 번 비행기로 마을 전체에 치료약을 뿌리고 나니 세 명 중에 두 명의 암이 나았다. 그런데 그 마을의 멀쩡히 건강하던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아눕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약을 잔뜩 뒤집어썼으니 당연히 아플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세상에나! 이렇게 말도 안되는 암치료법이 어디 있냐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요즘 암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 위의 지어낸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 암환자가 방사선이나 약물치료를 받을 때에 암세포뿐만 아니라 건강한 정상세포도 손상 받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약물을 나노택배에 담아서 암세포에게만 전달하는 기술이 최근 개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나노택배를 우리 몸속으로 어떻게 보내는지 들여다보자.

◆미션 M: 암세포만 골라 골라 죽여라

암환자가 독한 약으로 치료받다 보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구토나 설사 또는 빈혈과 같은 부작용으로 무척 고생한다. 이것은 항암 화학요법으로 독한 약을 우리 몸에 넣었을 때에 암세포뿐만 아니라 멀쩡한 정상세포도 해를 입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서 부작용이 없는 항암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 과학자들 사이의 핫이슈다. 이 방법은 무척 어려워서 지금까지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다.

그냥 봐서는 암세포인지 정상세포인지 잘 구분도 되지 않는다. 더욱이 암세포와 정상세포가 다닥다닥 붙어서 한 덩어리로 뭉쳐있기 때문에 암세포만 골라낸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솔루션은 의외로 단순하다. 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마을 전체에 비행기로 약을 뿌릴 것이 아니라 암환자 세 명에게만 약이 담긴 택배 상자를 배달하면 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선 마을 사람들 중에 누가 암환자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치료약을 택배상자에 담아서 그 암환자에게 배달해야 한다. 이후 택배를 받은 암환자가 약을 먹으면 치료된다.

이러한 세 가지 과정을 세포에 적용하면 된다. 암환자 몸의 세포 중에서 어떤 세포가 암세포인지 알아내고, 약물을 담은 아주 작은 택배상자를 그 암세포에게 전달하고, 마지막으로 그 택배상자가 약물을 암세포를 향해 뿌려주면 된다.

김영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책임연구원

◆프로젝트 X: 암세포에게만 약을 전달하라

바닷가에서 한 발을 들어 물 위에 올려놓고 그 발이 물속으로 빠지기 전에 다른 발을 얼른 들어서 물 위에 올려놓기를 빠르게 반복하면 사람은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아주 쉽다. 그런데 막상 바닷가에 실제로 서서 해보면 안 된다. 이처럼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는 일은 참 많다. 암세포만 골라서 약물을 주입하는 것도 실제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우선 몸의 수많은 세포 중 암세포를 찾아내야 한다. 암세포는 특징적으로 빨리 증식하고 비정상적인 분화를 하면서 주변 조직으로 침투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이용해서 암세포를 찾을 수 있다. 또한 특정한 암세포와 결합을 잘하는 형광염료가 붙은 물질을 이용하면 암세포를 더욱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깜깜한 밤에 반짝반짝 빛나는 가로등처럼 형광염료가 붙은 암세포가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을 현미경을 통해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암세포를 찾았으니 약물상자를 보내면 된다. 마을의 암환자에게 약물상자를 보내는 것이야 이름과 주소를 써서 택배로 보내면 된다. 그런데 암세포는 아주 작을뿐더러 주소도 없다. 게다가 암세포에게 보내는 약물상자는 매우 작고 몸속의 세포로 전달되는 것이어서 전달해줄 사람도 없다.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솔루션 S: 약물 나노택배가 해냈다

과학자들이 해냈다. 영국의 대학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아드리안 조셉 연구팀이 뇌의 혈뇌장벽을 통과해서 치료 약물을 전달하는 방법을 2017년에 개발했다. 우리 몸의 혈관은 느슨한 세포로 되어 있어서 약물이 쉽게 통과해서 병든 세포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뇌의 혈관 벽은 세포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어지간해서는 약물이 혈관 벽을 뚫고 지나가지 못한다. '혈뇌장벽(blood brain barrier)'이라고 불리는 혈액과 뇌 사이의 장벽을 뚫고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을 조셉 연구팀이 개발한 것이다.

이 연구팀은 약물을 가득 담은 폴리머좀이라고 불리는 작은 운반체를 개발했는데 이것이 혈뇌장벽을 뚫고 들어간다. 폴리머좀은 세포 속에 있는 리보좀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양친매성 공중합체 중공구조물이다. 이 폴리머좀은 세포보다 더 작은 수 마이크로미터 이하 크기인 매우 작은 것이다. 이것은 최근들어 약물전달이나 나노반응 용기 등의 용도로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폴리머좀이 혈뇌장벽을 뚫고 들어가는 비법은 바로 화학주성이다. 작은 약물 상자와 같은 폴리머좀은 포도당을 감지하여 포도당 농도가 높은 쪽을 행해 이동하는 화학주성 성질이 있다. 이것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어서 포도당의 농도 차이에 의해서 스스로 움직인다.

최근에 나노입자를 이용하는 다른 방법도 개발되었다. 울산과학기술원 유자형·김채규·강세병 교수 연구팀이 치료 약물을 암세포까지 온전히 전달하는 약물 전달체를 개발하여 2018년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학술지에 발표했다. 기존에 개발된 약물 전달체는 대부분 우리 몸속의 여러 단백질들이 달라붙을 수 있기 때문에 암세포에게만 약물을 전달하는 효율이 낮았다. 그래서 엉뚱한 곳에 약을 뿌리게 되어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연구팀은 기존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약물을 담은 나노입자를 특수한 단백질로 한번 더 포장해서 감쌌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 단백질이 달라붙어 일으키는 문제를 방지했다.

이 연구팀은 생체환경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기존에 개발된 방법보다 10배나 효율이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 또한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기존의 약물 전달체보다 암세포를 더 잘 공격한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살아있는 박테리아를 이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살아있는 박테리아는 화학주성 성질에 의해서 특정한 물질이 있는 곳을 향해서 편모를 움직여 이동해간다. 이런 성질을 이용해서 짐꾼이 등짐을 지고 목적지까지 물건을 운반하듯이 박테리아가 약물을 가지고 암세포를 향해 가도록 할 수 있다. 이처럼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학자들에 의해 멀지 않아 항암제 부작용이 없는 치료법이 개발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김영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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