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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한담] 가을 오는 학계마을

전영평(가야명상연구원장.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전영평(가야명상연구원장.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산골은 벌써 가을이다. 매화산을 등지고 비계산, 오도산, 두무산을 앞장세운 학계마을에서는 할머니들이 앞마당, 공터, 주차장 등에 참깨, 고추, 도라지, 토란줄기 말리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나도 김장배추, 무, 갓 등을 일주일 전에 심어 놓았다.

벌새는 꽃댕강 꽃을, 호랑나비는 능소화를 탐닉하고 말벌도 벌통 짓기에 한창이다. 머리칼에 자꾸 걸리는 귀찮은 거미줄도 가을 작품이다. 한밤중 도로에는 노루 가족, 너구리, 뱀 등이 심심치 않게 보이곤 한다. 곤충부터 사람까지 모두 겨울나기 준비에 몰두하는 산골 풍경이다. 마을 귀퉁이 한적한 우리 집 앞에도 이때가 되면 벌초하러 온 자동차로 가득하다. 산골 여기저기 예초기 소리가 서로 어울려 마치 벌들이 붕붕대는 듯하다. 산골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싸늘해지고 있다.

군불을 조금 때고 이불을 목까지 당겨 덮으면 금세 잠이 오긴 하지만 새벽 싸늘함에 오금이 당겨지고 목이 따끔해지기도 한다. 역시 가을은 가을이다. 청장년들은 비계산에 버섯 따러 나선다. 이맘때면 송이, 능이, 싸리버섯 등을 채취해서 나눠 먹는다. 엊그제는 능이버섯 잔뜩 넣고 촌닭을 잡아 닭백숙 만들어서 함께 먹었다. 마을회관에도 몇 마리 보내드렸더니 참 맛있게 드셨다며 과일을 내어 주신다.

풍요로운 시절이다. 올해는 비도 잘 오고 태풍도 비켜가서 오곡과일이 풍성하다. 다음 주면 벌써 추석이다. 귀촌한 지 5년 동안 몸 안 사리고 온갖 농작물을 심어보았다. 땅도 기름지고 햇살도 좋아서 농사가 아주 잘 된다. 그런데 이제 농사짓기가 머뭇거려진다. 열정이 식어서도 힘이 없어서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그저 나하나 먹고 살만한 정도만 생산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 주려고 마음을 내거나 장마당에 팔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아무 생각 없이 큰 탐욕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살다 가면 좋겠다. 산골 예초기 소리가 오늘 따라 남의 일 같지 않다.

가야명상연구원장'대구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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