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넷플릭스,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콘텐츠 빠져나갈 넷플릭스, 자체 제작에 투자 또 투자

한때 넷플릭스는 마치 세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시장을 독식할 것 같은 위세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넷플릭스의 위기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디즈니 같은 막대한 콘텐츠 자산을 가진 미디어 기업이 곧 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거라는 예상이 나오면서다.

넷플릭스. EPA연합뉴스 제공
넷플릭스. EPA연합뉴스 제공

◆디즈니플러스 서비스 되면 어떤 일이...

최근 몇 년 간 넷플릭스라는 명칭은 우리에게 꽤 친숙해졌다. 이제 네 명이 모여 '넷플릭스 계'를 하는 건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4명의 동시접속이 가능한 프리미엄 요금제에 가입하면 각각의 계정을 따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넷플릭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기존의 지상파나 케이블 시장으로부터의 이탈 현상이 예고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른바 '코드 커팅(Cord-cutting)' 현상이 그것이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넷플릭스 서비스 이후 생겨난 이 현상은 기존 지상파나 케이블 가입자들이 이를 해지하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같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걸 말한다.

놀라운 건 이런 콘텐츠 소비패턴의 변화를 만든 넷플릭스의 국내 정식 서비스가 2016년에 시작됐다는 점이다. 짧은 기간에 넷플릭스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다. 그것은 기존 채널과 콘텐츠에 공동투자하거나 아니면 국내 제작진에 100% 투자해 우리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는 방식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600억이 투자됐고,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이나 국내 최초로 시도된 선사 배경의 드라마인 '아스달 연대기' 등에 수백 억이 투자됐다. 또 김은희 작가의 '킹덤' 같은 작품은 아예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되며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러니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은 이제 국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대작이거나,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작품들이라면 응당 넷플릭스와 함께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 3년 만에 국내의 OTT 시장을 장악하다시피해온 넷플릭스는 최근 들어 위기론이 솔솔 피어나고 있다, 그것은 디즈니 플러스(+)의 출시가 점점 임박해오면서다. 오는 11월 12일 미국에서 론칭하는 디즈니플러스는 한 마디로 말해 '캐릭터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디즈니의 막강한 OTT 서비스를 예고하고 있다. 끝없는 인수합병을 통해 디즈니는 기존 디즈니 캐릭터들을 물론이고 마블 슈퍼히어로, 스타워즈, 픽사 캐릭터들까지 모두 갖춘 무소불위의 라인업을 갖게 됐다. 이러니 넷플릭스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일 수밖에.

11월 12일 미국에서 론칭하는 디즈니 플러스. EPA연합뉴스 제공
11월 12일 미국에서 론칭하는 디즈니 플러스. EPA연합뉴스 제공

◆넷플릭스에서 사라지는 콘텐츠들

중요한 건 디즈니플러스가 서비스를 시작하면 기존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던 일부 콘텐츠들을 볼 수 없게 될 거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마블에서 제작한 '어벤져스' 시리즈나 관련 슈퍼히어로물들은 보기 어려워진다. 또 디즈니, 픽사, 폭스의 영화나 드라마도 서서히 빠져 2021년 이후에는 아예 목록에서 지워져 버릴 운명에 처했다. 마블에서 판권을 빌려와 자체 제작한 '데어데블'이나 '제시카 존스' 같은 드라마 시리즈도 추가 시즌은 제작되지 않는다. '그레이 아나토미'나 '뉴걸' 같은 작품도 디즈니로 귀속된다. 넷플릭스로서는 디즈니 하나가 빠져나가도 큰 타격을 입는 셈이다.

하지만 디즈니 작품들만이 아니다. 굵직한 콘텐츠 제작사들이 일제히 OTT 시장에 뛰어들고 있어 넷플릭스는 막강한 경쟁자가 생기는 동시에 지워지는 작품들도 갈수록 많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통신사인 AT&T가 운영하는 워너미디어는 새로운 OTT 서비스인 HBO맥스를 내년 초 정식 출범할 예정인데, HBO는 '왕좌의 게임',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세계적인 콘텐츠들을 선보여온 제작사다. 우리에게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 'E.T.'나 '쥬라기 공원' 같은 작품들로 잘알려져 있는 유니버설 픽처스를 보유하고 있는 컴캐스트도 NBC유니버설이라는 OTT서비스를 내년 초 출시할 예정이다. 이들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넷플릭스의 핫 아이템들도 빠져나갈 예정이다. '프렌즈'가 올해 말 HBO맥스로 옮겨가고, '더 오피스'나 '파크스 앤 레크리에이션'도 2021년부터 NBC유니버설로 판권이 돌아간다.

지금까지는 콘텐츠 제작사들이 직접 OTT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글로벌 유통방식으로 끌어안은 넷플릭스는 한 마디로 독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콘텐츠 제작사들이 직접 유통에 뛰어들면서 넷플릭스는 그 많던 콘텐츠들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됐다. 항간에는 곧 넷플릭스의 곳간이 텅텅 빌 거라는 다소 과장된 소문까지 흘러나온다. 과연 넷플릭스의 위기는 어떤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변화를 얘기할까.

넷플릭스
넷플릭스 '킹덤'

◆넷플릭스가 밀려나면 생겨날 또 다른 위기들

그렇다면 넷플릭스의 위기는 '강 건너 불'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들이 이제 제작만이 아닌 유통에 뛰어들어 OTT 시장을 잠식해나가는 일은 극심한 콘텐츠 집중현상과 함께 소외 현상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넷플릭스 역시 지금의 위기를 감지하며 자체 제작 콘텐츠를 늘려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직접 제작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전 세계의 다양한 콘텐츠들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우리의 경우만 놓고 보면 '킹덤'이나 '좋아하면 울리는' 같은 드라마나 '옥자' 같은 영화 또 '범인은 바로 너'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만들어졌다. 또 '미스터 션샤인'이나 '아스달 연대기' 같은 작품도 넷플릭스의 투자가 아니면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작품이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에 어울리는 덩치 큰 작품들은 넷플릭스의 투자가 필수적으로 있어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즈니플러스나 HBO맥스 같은 자체 제작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OTT 서비스가 넷플릭스처럼 글로벌한 외부 제작사들에 얼마나 투자를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물론 그 방식이 자신들의 글로벌 영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들 역시 넷플릭스 같은 투자를 통한 제작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보유한 캐릭터들과 작품 연작 시리즈만으로도 글로벌한 힘을 갖추고 있는 이들에게 콘텐츠 회사가 아니어서 투자를 해온 넷플릭스 같은 행보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이 거대한 글로벌 콘텐츠 공룡에 의해 전 세계의 콘텐츠 시장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네 콘텐츠 제작사들은 향후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어떤 대처를 해나가야 할까. 한류가 글로벌하게 알려진 건 초기에는 이벤트적이고 사건적인 것이었다. 즉 기획된 것이 아니라 어쩌다 해외에서도 큰 반응을 얻게 된 것이 초기 한류였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기획적인 한류 콘텐츠를 시도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미 글로벌 콘텐츠가 국내에서도 활발히 소비되고 있는 상황에 '우물 안 개구리'로는 우물 안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는 형국이다. 글로벌한 시각을 갖추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우리 것을 접목시켜 독특한 차별성을 가진 작품들로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지분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막대한 자본과 서비스 노하우가 필요한 유통 자체보다는 콘텐츠에 승부를 거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일 수 있다. 제아무리 유통의 힘이 강하다 해도 매력적인 콘텐츠는 어디서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넷플릭스의 위기를 우리의 현실을 각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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