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지하차도 건너기' /하모/우주나무/2019

바다를 건너는 나비처럼

8월 마지막 날. 학이사에서 마련한 교통편으로 청주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열리는 2019년 대한민국 독서대전 덕분에 '지하차도 건너기'라는 책을 만났다. 저자명이 낯설어 들춰본 프로필에 "바다를 건너는 나비처럼 글을 씁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하모 작가의 다른 작품 '알아주는 사람' 과 '소원을 들어주는 가게'는 '우주나무' 출판사 부스에 서서 읽고, '지하차도 건너기'만 사서 대구로 돌아왔다.

선택이 즉흥적일 수밖에 없었음에도 강한 끌림이 있었다. 지친 몸으로 서서 훑어 읽기에도 생활 속에 있는 것 같지만 다른 무엇이 담긴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다. 문장이 간결해서 그런지 화자가 여자아이임에도 무뚝뚝하게 느껴져서 판매자에게 작가님이 남자분이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그 분이 하모 작가가 아니셨길 바랄 뿐이다.)

'지하차도 건너기'에서 열 살 소녀 민애린의 목소리는 작고 슬프다. 동물원으로 현장학습을 가는 날. 엄마가 어젯밤 사서 냉장고에 뒀던 김밥을 혼자 먹는다. 엄마가 싼 것 같은 기분이 하나도 들지 않는 '엄마김밥'. 한 줄은 아침이고 나머지는 오늘 도시락이다. 아이는 엄마 냄새가 나는 향수를 뿌리면서 생각한다. '이 향수처럼 상큼한 하루가 되면 좋겠다.' 고.

아이는 우리 동네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엄마는 '더 좋은 학교'에 아이를 넣었다. 더 좋은 학교에서 더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만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게 엄마 설명이었다. 아이는 매일 우리 동네와 신도시 사이 기찻길을 넘어 학교에 갔다. 기찻길을 건너는 길은 여러 가지였지만 엄마는 꼭 산일역 육교로만 다니라고 했다.

서미지 작
서미지 작 '영주 무섬다리'

현장학습 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친구들은 더럽고 위험한 지하차도에 사는 괴물에 대해 떠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곳에 보이지 않는 비밀통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엄마 쥐와 아이 쥐가 벽에 있는 문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하차도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지하차도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괴물에게 쫓기다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비밀친구들을 만난다. 십 년 묵은 호박으로 호박죽을 끓여 먹는 날. 아이는 백 년 만에 찾아온 손님이 되어 귀한 대접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가슴이 벅찼다. '나는 지하차도를 건넜다! 내가 혼자서 지하차도를 건넜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지하차도라는 무서운 공간이 사실은 천년이 되어도 없어지지 않을 판타지 공간이라는 설정이 좋았다. 그렇지만 지하차도에서 판타지 공간으로 뛰어 들어가는 장면 그리고 허창우와 늑대 아이의 연결고리가 견고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그러나 한 아이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판타지로 구현하려는 작가를 따라가는 동안 많은 공부가 되었다.

가을장마가 치근대는 사이. 풀벌레 소리가 금세 잦아졌다. 이제 저녁마다 놀이터 아이들 소리도 왕창 커져갈 것이다. 그 아이들도 안전한 길을 버리고 지하차도로 건너가려할 때가 온다. 마음이 단단해지는 순간은 아이가 스스로 작은 성공을 이룰 때마다 찾아오는 것임을 자주 잊고 산다. '지하차도 건너기'는 그런 나에게 깜짝 선물한 동화가 되었다.

서미지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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