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8년 대구부에 대구감옥이 설치된 이후에 일제는 1910년 대구감옥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경북대학교 치과병원~일신학원)으로 이전하였고, 1923년에 대구감옥을 대구형무소로 변경하였다.
대구형무소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고초를 겪으며 불굴의 항일정신을 지켜나갔다. 그중 의열단원 박재혁은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하시모토 슈헤이 서장을 처단하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단식 순국하였다. 의열단원 최수봉은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큰 타격을 주지 못한 채 달아나서 자결을 시도하다가 일본 순사에 의해 포박당해 사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숭고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은 장승원·박용하 처단 사건으로 인해 대한광복회가 발각되자, 안동의 이동흠(향산 이만도 손자)의 집에 은신하며 국외 탈출을 도모하다가 결국 체포되어 대구형무소 사형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외에도 일제가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을 전개한 결과, 호남의병장들을 대거 체포해서 대구형무소로 압송하여 사형을 집행하였다. 일제가 눈엣가시로 여겼던 강무경, 심남일, 안규홍, 양진여-양상기 부자, 오성술, 전해산 등이 대구형무소 사형장에서 고귀한 삶을 조국에 바쳤다.
대구형무소 사형장 터는 현재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이 건립된 장소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일제가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던 이육사를 체포하여 대구형무소에 구금했던 사실을 근거로, 1층 내부 벽면에는 이육사의 부조와 그의 시 '황혼'(黃昏)이 새겨져 있다.
서대문형무소가 항일정신을 일깨우는 교육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대구형무소를 복원할 수는 없어도, 대구형무소 사형장 터 주변에 대구형무소의 옛 사진과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의 사진 및 활동을 나무판에 새기거나 그들의 흉상을 청동으로 제작하여 전시함으로써 후손들에게 독립 의지를 북돋게 할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구 영남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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