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는 백면서생(白面書生)들의 흥망성쇠를 빼면 완성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유비, 조조, 손권 같은 영웅들의 지근거리에 그들이 있었다.
백면서생은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한마디로 '풋내기'를 뜻한다. 그런데 풋내기도 여러가지다. 풋내기에 머무른 선비가 있고, 명군사·명재상이 된 인재도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흥(興)하고 성(盛)한 백면서생의 대표는 촉나라의 제갈량이다.
제갈량은 유비가 3차례 찾아가 초빙(삼고초려)하기 전까지, 중원의 변방 형주에서나 이름난 선비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유비군에 합류하자마자 군 지휘권을 부여 받아 수많은 승리를 거뒀다. 또 촉나라에서는 행정을 총괄하는 승상을 맡아 국가를 강소국으로 만든 것은 물론, 대국 위나라를 끊임없이 위협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제갈량은 젊은 시절 남다른 백면서생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학문을 위한 학문을 한 선비가 아니라, 예컨대 '천하삼분의 계' 같은 '비전'을 연구·제안·실천해 결국 현실(위, 촉, 오 성립)로 만든 선비라는 것.
삼국지연의에서 망(亡)하고 쇠(衰)한 백면서생의 대표는 위나라의 양수다.
양수도 젊은 시절 천재로 소문이 났다. 언변이 특히 그랬는데, 머리가 민첩하게 잘 돌아갔다는 얘기다. 또한 대대로 삼공(태사, 태부, 태보 등 최고위 대신 3개 직위)을 낸 명문가 출신이기도 했다. 젊을 때 어쨌건 백수였던 제갈량과 달리 양수는 일찍이부터 조정의 벼슬을 했다. 그래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조조가 일찌감치 능력을 알아보고 가까이 뒀다.
양수는 그런 조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정사에 따르면 군기 누설죄가 이유였는데, 연의에는 '계륵'(닭의 갈비) 사건이 양수의 죽음을 부른 것으로 나온다. 한중에서 유비군과 대치하던 조조군 진영. 부하가 암호를 무엇으로 할 지 묻자 조조는 저녁으로 먹은 국 그릇에 담긴 계륵을 보고 "계륵이다"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를 양수가 전해 듣고는 '철수 준비'라고 해석해 지시를 내렸는데, 이게 군의 사기를 흔들었다며 조조가 양수의 목을 자른 것이다.
사실 양수는 조조로부터 미움을 하나 둘 적립하고 있었다. 재기 넘치는 생각이 많긴 한데, 입에만 담아둔 채 묵묵히 실천하면 좋았을 것도 바로바로 내뱉으며 미움을 샀다. 결국 업적 하나 남기지 못한 채 꽤 똑똑했던 풋내기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법학자 출신 백면서생 조국은 어느 쪽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초빙해 첫 공직부터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고위직을 맡은 점은 제갈량의 첫 등장과 비슷하다. '법무검찰개혁'(검찰개혁 내지는 사법개혁)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왔고 그걸 자신을 알아 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안해 정치적 동지가 된 점도, 제갈량과 유비가 삼고초려에 이어 '수어지교'(水魚之交, 매우 친밀하게 사귀어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의 연을 맺은 사례와 얼추 닮았다.
그런데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의 법무검찰개혁이 연구·제안에 이어 실천 및 현실화로까지 잘 이어질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전례를 감안하면 이 '알 수 없음'은 왠지 모르게 '어려움'으로 읽힌다. 가령 백면서생(경제학자, 고려대 교수) 출신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 데다 정치적 힘도 얻지 못하는, '그럴듯한 이론'으로 남은 상황이다.
즉, 백면서생들이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결국 남는 것은 무수한 '말'(그리고 그걸 기록한 '글') 밖에 없게 된다. 참 말 많던 양수처럼 말이다. 역시 참 많은 말을 남긴(특히 트위터로) 조국 장관은 혹여 양수의 운명을 따라갈 지 아닐 지의 기로에 일단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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