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억지 편 가르기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나라를 구한 서애 류성룡은 1598년 11월 19일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숨진 날 관직에서 쫓겨났다. 류성룡이 천거한 이순신과 선조가 믿고 나라를 맡긴 류성룡은 임진왜란에서 선조를 도와 전쟁 승리를 이끌었다.

임란 승리의 두 영웅이 받든 선조는 과연 왕다웠나. 아무래도 '아니다'이다. 그는 나라나 백성보다 권력 유지를 위한 '치사한 짓'을 더 저질렀다. 재임(1567~1608) 42년에 24차례의 정치 술수로 신하를 시험했으니 말이다. 그가 애용한 정치 술수는 형식의 차이는 있으나 내용은 비슷하다. 바로 왕 자리를 내놓고 세자 광해군에게 물려주겠다는 뻔한, 너무나 속이 보이는 명령이다. 선위(禪位), 섭정(攝政), 전위(傳位) 등 표현만 달랐을 뿐이다.

1.7년에 한 번꼴 소동은 불안한 정치적 입지나 전쟁 책임 추궁 등 불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신하의 충성 시험을 위한 꼼수였다. 소동이 임란 때만 22차례여서 전쟁에도 오직 권력에만 관심이던 선조의 민낯을 보게 된다. 전쟁도 버거운데 신하는 끊임없이 왕의 편에 서야 했고 충성심을 강요당해야만 했다.

정권을 지키기 위한 이런 술수는 광복 이후에도 흔했다. 특히 군사 정부에서 잦았던 간첩단 조작 사건, 북한을 끌어들여 선거 등에서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북풍'(北風)도 민심의 억지 편 가르기 사례였다.

지난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보면 처음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대통령의 순수성과 과연 대통령다운지를 의심하는 사람이 적잖다. 남북 문제를 비롯해 한일 및 한미 관계, 부처 장관 임명 등이 그렇다.

남북 관계는 처음엔 국민이 반길 만했지만 이젠 나머지 사례처럼 되레 민심의 분열을 부추기는 꼴이다. 이런 민심 분열의 편 가르기는 마치 뒷 파도가 앞 파도를 덮치듯 잇따라 멈추지 않으니 정권 유지용 지지층 결집 전략은 아닌지 의심스럽고 국민은 혼란스러움에 정신이 없다.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보면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더욱 분명하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을 거스른 데 따른 어수선함을 덮을 또 다른 편 가르기의 큰일을 터뜨릴 것은 자명하다. 대통령과 여당, 조 장관 입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 터질 일이 연극 속이라면 재미라도 있겠지만 실제 상황이라 마음은 벌써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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