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찬란한 예술의 기억] 상자 속 예술이야기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어릴 적 살던 한옥에는 다락이 있었다. 부엌으로 통하는 문 바로 위, 그곳에 올라가면 온갖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는 상자들이 있었다. 식구들이 모두 낮잠을 자는 휴일 한낮이면, 혼자 그곳에 올라가서 상자들을 들춰보곤 했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에서부터 삼촌들의 학창 시절 노트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그 속에 있었다. 갓 쓰고 흰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의 사진을 볼 때면,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나고 자란 조선시대가 가깝게 느껴져 신기하기도 했다. 이후 세월이 흐르고 몇 차례 이사를 하는 사이, 그 상자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다락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졌다.

〈대구문화〉 취재를 위해 원로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업실이나 집을 드나들면서, 다시 그 다락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필자가 만난 원로 예술가들은 대부분 그들의 활동 자료들을 아주 잘 보관하고 있었다. 필자가 살아온 세월을 훨씬 넘는 시간을 견뎌온 자료들이었다.

대구시립교향악단 고(故) 이기홍 초대 지휘자는 2000년 초반 필자와의 첫 만남에서 빛바랜 누런 포스터 한 장과 오래된 공연 프로그램들을 꺼내 보여줬다. 손으로 직접 쓰고 색칠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포스터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전신인 대구현악회의 창립 포스터였다. 이 지휘자가 타계한 후, 그의 자택을 찾아가 보니 안타깝게도 그 포스터를 비롯해 일부 자료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한국 합창계의 거목인 대구시립합창단 장영목 초대 지휘자의 자택 발코니에는 철제 캐비닛이 놓여 있다. 장 지휘자와 부인 모두가 집 안에 먼지 한 톨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성격이지만, 한국 합창의 역사를 증명해 줄 자료들과 악보들은 그 캐비닛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남편 정막 선생과 함께 현대무용 활동을 펼친 대구시립무용단 김기전 초대 안무자는 자주 거처를 옮겨야 했음에도, 세간살이보다 무용 관련 자료들을 더 소중히 보관해 왔다. 1958년 창립된 경북무용협회 포스터, 1962년 경주에서 열린 신라문화제 프로그램에서부터 대구 안팎 무용가들의 모습이 담긴 많은 자료들이 그의 보물 창고 속에 가득하다.

오페라 도시 대구로의 초석을 닦은 바리톤 고 이점희 선생의 아들 이재원 씨는 선친이 남긴 유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선친처럼 음악가의 길을 걷지 않았음에도, 선친이 생전에 대구 음악을 일구기 위해, 대구에서 오페라 운동을 하기 위해 쏟은 열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낡은 포스터 한 장이라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김금환 초대 단장의 뒤를 이어 영남오페라단을 이끌고 있는 김귀자 단장은 어떤가. 한국 초연 무대를 기록한 오페라의 의상에서부터 무대 스케치에 이르기까지, 영남오페라단의 역사 자료들을 꼼꼼하게 보관하고 있다. 현대무용가 구본숙 선생은 유년 시절 자신의 무용 사진에서부터 공연 사진, 시립무용단 공연 자료들을 한 장도 빠짐없이 모두 가지고 있어, 자료들을 들춰본 필자가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원로 작곡가 임우상 선생은 20여 년 전부터 일찌감치 '음악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음악 단체나 지역의 연구 기관이 자료 수집 운동을 벌일 때, 앞장서 원로 음악가들을 모으고 자료를 기증해주셨다. 자료 수집 주관 주체가 몇 차례 바뀌면서, 같은 일이 반복될 때도 선생은 언젠가는 '제대로'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후배 음악가들을 설득하고 다독이셨다.

여기 예를 든 원로 예술가들은 모두 70, 80대 고령이시다. 이제는 공적 기관에 의해 이 분들의 역사가 수집되고 기록되어야 할 시기가 됐다. 이제 대구시가 직접 주관하는 아카이브 추진단이 출범했다. 더 늦기 전에 이분들의 소중한 자료들을, 찬란한 예술의 기억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기록해야 역사가 되고 보존해야 아카이브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서는 우리 지역 예술가들의 기록을 더듬고, 촘촘한 그물을 엮어 던져 건져 올린 이야기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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