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의 어촌에서 고달픈 삶을 이겨내던 외국인 노동자 4명의 목숨을 앗아버린 경북 영덕 수산물가공업체 가스질식사고(매일신문 11일자 1면)는 예고된 인재(人災)로 확인되고 있다.
사고가 난 A수산물가공공장은 폐수배출시설로 신고돼 있고 B대표가 시설 관리자로 돼 있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먼저 폐수는 사고가 난 탱크에 모아 슬러지를 가라앉히고 인근의 수산물가공센터로 보내 정화하도록 돼 있는 데도 아무런 사전 안전조치 없이 청소를 이유로 근로자들을 유독가스를 뿜는 탱크로 들여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결과 환기는커녕 산소농도 측정, 송기마스크 착용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또 이 업체의 경우 소규모인데다 폐수 정화시설이 없기 때문에 관리자가 인터넷으로 환경보전협회가 실시하는 가장 낮은 수준의 교육(5개 등급 중 5등급)만 받으면 돼 교육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B대표는 경찰 조사에서 '8년 전 직접 청소할 때는 괜찮아 이번에 이렇게 사고가 날 지 정말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고 현장감식에서 탱크 내부 가스를 측정한 결과 황화수소와 암모니아가스가 측정됐는데, 황화수소의 경우 무려 3천ppm이나 검출됐다. 악취를 내는 무색의 황화수소는 보통 생물의 사체가 부패할 때 만들어지는데 500ppm 이상이면 사람이 죽을 수 있고, 100ppm 정도면 구토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전문가는 "슬러지가 그대로 쌓여 있고 밀폐된 곳에 무방비로 들어간 거 자체가 자살행위"며 "청소를 하더라도 슬러지를 모두 제거하고 환기를 충분히 한 뒤 송기마스크와 밀폐안경 등 안전장구를 갖추고 들어가는 게 기본"이라고 했다.
영덕경찰서는 전날에 이어 11일에도 B대표를 불러 조사를 벌였다. 경찰은 안전장비 미착용 상태로 탱크 청소를 시켰다는 점에서 B대표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하고 11일 실시한 부검의 공식적인 사인도 확인해야 해 시간은 다소 걸릴 것"이라며 "숨진 4명에 대해 실시한 부검 1차 잠정 소견은 질식사다. 어떤 가스에 의해 숨졌는 지는 정확한 분석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도 이번 질식사고와 관련, 안전조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양유건 고용노동부 포항지청 산재예방지도과장은 "사업장 확인 결과 환기와 산소농도측정, 송기마스크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는 한편, 사고를 당한 불법취업노동자에 대한 산재 등 보상 방안도 정상적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영덕군은 영덕아산병원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하는 한편 태국인 통미(34) 씨와 나티퐁(38) 씨의 유족에게 연락해 13일 부산을 통해 입국하도록 했다. 태국인 니콤(42) 씨와 베트남인 판빈디오(53) 씨의 유족은 현재 영덕에 함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례와 관련된 비용은 모두 B대표가 부담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혼수상태에 빠졌던 태국인 통미(34)씨도 11일 오전 1시쯤 숨졌다. 니콤 씨와 판빈디오 씨는 2016년부터 이 업체에서 일했고, 나티퐁 씨와 통미 씨는 올해 3월부터 함께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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