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자가 서민들의 존경을 받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나마 선진국의 상류층들은 재산과 권력만 누리는 게 아닌 경우가 많다. 도덕적인 의식이나 수준 또한 높다. 그러나 한국의 가진 자들은 부귀(富貴)에만 목숨을 걸고 그 대물림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도덕성은 일반 국민보다도 못하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 재산을 기부해 제주도의 기근을 해소한 거상 김만덕, 모든 가산을 정리해 만주로 집단 망명했던 안동의 독립운동가들이 그 좋은 본보기이다. 특히 만석꾼의 재산을 자랑했던 영남 제일의 부자 '경주 최부잣집'처럼 한 가계가 수백 년에 걸쳐 부를 유지하면서도 존경과 칭송을 받은 경우는 드물다.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는 가훈을 대를 이어 실천해 온 집안이다.
때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졌고, 더러는 사회봉사와 구휼을 위해 많은 재산을 아낌없이 썼으며, 마지막으로 조국의 광복과 후학 양성 및 문화 창달을 위해 전 재산을 내놓았다. 그래서 탐관오리와 부자들이 타도의 대상이던 동학 농민 봉기의 거센 물결에도, 6·25 전쟁 전후 빨치산의 부잣집 습격에서도 최부잣집은 아무 탈이 없었다.
'경주 최부자 500년의 신화'라는 책을 쓴 저자는 "최부잣집의 숭고한 정신과 그 후손들의 조상에 대한 자긍심은 새로운 씨앗이 되고 뿌리와 줄기와 잎이 되어 언젠가는 다시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최부잣집은 막을 내렸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 후손인 최성해 동양대 총장님에게 경의를 표한다.
최 총장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 입사한 외아들을 퇴사시키고 해병대에 보낸 사람이다. 그는 자신과 대학에 닥칠 커다란 불이익을 예상하면서도 살아 있는 권력자들의 회유와 협박에 저항했다. 부귀를 대물림하기 위해 특권과 반칙, 편법과 꼼수, 탈법과 위법을 총동원한 것도 모자라 거짓과 위선으로 일관해온 사람들과는 격이 다르다. 최부잣집 정신을 훼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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