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림(41·가명) 씨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힘에 부친 듯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전 남편과 12년간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공황장애를 얻었다. 지금도 호흡마저 어려울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결국 지난 2월 이혼했지만 불행은 자꾸만 찾아왔다. 딸아이를 데리고 홀로 서기에 나선 그녀가 가장 믿고 의지하던 친언니가 지난 7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 이 씨는 "딸을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하는데 숨쉬기조차 점점 어렵다"며 고통스러워했다.
◆우울증 약 먹는 모녀
딸 정현(12·가명)이는 다섯 살 때 자동차에 극도의 공포증을 보이기 시작한 이후 줄곧 소심하고 겁이 많았다. 여러 검사를 받아봤지만 공포증의 원인도 찾질 못했다.
정현이는 지난해에서야 겨우 혼자서 버스를 탈 수 있게 됐다. 이마저도 엄마와 함께 수십 번 버스에 오르내리길 반복한 결과이다.
소리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 친구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에도 귀를 막고, 음악 시간에는 교실 밖으로 도망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다. 이 씨는 "꾸준히 정신상담을 받고 약을 복용하며 나아지고 있다. 다만 무서움을 극복하기 위한 정현이의 행동들이 빌미가 돼 친구들과 못 어울리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이 씨는 정현이의 공포증세가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딸을 진단한 의사는 '양육자가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고 조언했다.
전 남편은 뚜렷한 직업이 없었다. 택배업, 공장근무, 판매업 등 일을 벌였지만 1년 이상 이어가질 못했다. 남편이 집을 담보로 대출한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녔고, 바람을 핀 것도 수차례다. 그 사이 이 씨는 몸과 마음의 병이 심각해졌다.
23살 때 부터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앓아온 이 씨의 손과 발은 그사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은 이미 굽힐 수도 없을 만큼 변형됐고, 두 발 발가락도 40도가량 꺾여 한 치수 큰 신발을 신어야만 간신히 들어간다.
이 씨는 "남편의 불륜사실을 시댁에 알렸더니 '진작에 살을 빼라 하지 않았느냐'는 타박만 하더라. 시어머니 말에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고 털어놨다.
◆이혼사실 친정식구, 딸에게 차마 못 알려
이씨는 결국 지난 2월 남편과 합의 이혼을 했지만 위자료, 양육비 지원은 없다. 당장 생계가 절박한 상황이지만 하소연 할 곳 하나 없는 것이 더 서럽다. 아직 친정 식구들과 정현이에게도 이혼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언니가 세상을 떠나는 등 경황이 없는데다 친정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탓이다. 딸이 큰 충격을 받을 것도 걱정이다.
현재 굳어버린 손발에 공황장애까지 앓는 이 씨는 도저히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구청에서 신청해 지난 5월부터 받은 긴급생계비 월 75만 원이 유일한 수입원이다. 이마저도 다음 달이면 지급이 끝나 앞으로 먹고살 일이 깜깜하다.
이혼 후 구한 월셋방 보증금 900만 원도 아직 마련하지 못한데다, 월세마저 자꾸 밀리다보니 마음씨 좋던 집주인도 방을 빼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딸의 장래 만큼은 지켜주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일까. 이 씨는 "정현이가 3달 전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수학실력이 좋아졌다고 학교에서 칭찬을 들어 행복해 한다" 며 "공부라도 잘 가르치면 나처럼 힘든 삶을 살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에 형편이 쪼들려도 학원을 그만두라는 말이 입에서 떠어지질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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