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봐왔던 환자의 아들이 어느 날 외래를 방문하였다. 흔히 있는 일이라 왜 방문하였는지 짐작 할 만 하다. "선생님, 오랫동안 저희 아버지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도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산책도 하시고요. 그런데 최근에 부쩍 눈에 띄게 숨이 차 하십니다." "네, 그럴 수 있습니다. 심근경색증 이후에 심장기능이 많이 나빠 지셨거든요."라고 설명하자, 보호자인 아들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말인데, 저도 서울에 살고 해서 더 늦기 전에 큰 병원으로 옮겨서 정밀진단을 받고 싶습니다. 진료의뢰서를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지역 종합병원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이렇게 옮겨 간 환자는 대개 6개월 정도 지난 후 재방문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환자는 어김없이 특별할 것 없는 진료내용에, 본원에서 이미 다 시행했던 검사를 중복해 받고, 별 것 없는 책 한 권 분량의 결과지를 내밀기 일쑤다. 환자가 덧붙인 한 마디는 외래를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제 검사도 다 했고 특별한 것이 없으니 지방 아무 대학병원이나 다니면서 약 받으면 되고, 힘들게 서울까지 올라올 필요는 없다고 하네요." 그렇게 쉽게 지역 대학병원은 환자나 보호자, 심지어 서울의 의료진에 의해 지방의 '아무' 대학병원으로 그 이름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지난 4일 정부는 상급종합병원 환자 집중해소를 위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 대책'을 발표했다. 의사가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할 때만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도록 병원 진료 의뢰절차를 강화하고 경증의 외래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면 환자에게는 본인 부담금을 높이고, 의료기관에는 기존의 가산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편 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상급종합병원들은 400억원대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며 반발하고, 동네 병의원들은 갑작스런 제도변화에 따른 민원 폭증을 우려하고 있다. 환자들 또한 양질의 수도권 진료를 선택할 수 있는 진료권이 훼손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현재의 개편안은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으로 진료비가 낮아지면서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는 의료전달체계의 부작용을 막으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하지만 의료전달체계 문제는 현정권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며, 한 두 가지 단편적인 대책으로 해결될 사안도 아니다.
무엇보다 의료기관의 수입이나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조금 조정한다고 환자의 흐름이 확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환자들이 돈과 시간을 쓰면서 큰 병원에 몰리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대형병원 의사들이 더 낫다"는 믿음과 문화가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의료기관 선택은 생명이 달린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인데 본인 부담금을 늘렸다고 해서 병원과 의사를 바꿀 것이라고 동의하기 어렵다. 큰 병원 쏠림현상은 돈이 더 들더라도 유명한 브랜드를 소비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행태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환자의 믿음과 문화를 그대로 둔 채로 국가가 규제만을 내세워 시장에 개입한다면 그 효과를 보기 어렵다. 환자들의 인식전환을 위해 지역거점 병원의 육성과 동네병의원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임중도원(任重道遠). 맡겨진 일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정부가 추진중인 개혁과제를 뜻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한 난제가 많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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