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태실, 세계유산의 길
'장태'(藏胎)라는 의식행위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역사 곳곳에 장태 습속의 단서가 남아 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만노군(萬弩郡) 지금의 진주(鎭州·충북 진천)에서 김유신이 태어나자 그의 태를 높은 산에 묻었다. 지금 태령산(胎靈山)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는 우리 장태 문화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고려사 '지리지'에도 김유신의 장태 상황을 서술한 대목이 보인다. '신라때 만노군 태수 김서현이 만명에게서 유신을 낳아 그 태를 현 남쪽 15리에 묻었더니 귀신이 됐다하여 태령산이라 불렀다 한다.'는 내용이다.
1천400여 년 전, 김유신의 장태 기록이 우리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삼국사기에 나온다는 것은 우리의 장태 문화가 오랜 전통의 산물임을 뜻한다. 전북 익산시 삼기면 연동리 태봉산의 백제 무왕 태실이나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의 궁예 태실 등은 고려시대 이전의 태실 유적이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과거시험 과목에 '태장경'(胎藏經)이 포함될 정도였다. 이는 고려 왕조가 국가 차원에서 장태를 중시하고 체계화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안태(安胎) 의례를 완성한 조선
조선시대에는 우리 장태 문화의 기원을 '신라말 고려초'라고 여겼다. 선조수정실록에 '태경의 설이 시작된 것은 신라와 고려의 사이다. 중국의 예로부터 있었던 일은 아니다'고 했다. 사관이 이런 기록을 남긴 것은 당대 일반적인 장태 인식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조선의 건국으로 장태는 중요한 의례로 발전하고 국사(國事)로 굳어진다. 특히 왕실 자손의 태실 조성이 본격화하면서 장태 의례의 복잡한 절차가 만들어지고 격식도 더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왕가의 태봉(胎封)은 단순히 태를 묻는데 그치지 않고 정치·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하나의 '국가 코드'로 자리잡게 된다.
'기록의 나라'로 꼽히는 조선에서 장태에 관한 기록은 빼놓을 수 없는 대상이다. 창업 후 500년간 수많은 장태 기록이 생성됐고 후대까지 그 기록이 이어진다. 왕조실록 이외에도 관청끼리 서로 주고받은 문서를 베껴놓은 등록(謄錄), 의례·의식의 궤범인 의궤(儀軌) 등 당대 장태 의례의 모든 진행 과정을 소상하게 되짚어볼 수 있는 자료가 많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조선시대의 각종 의궤는 모두 546종, 2천940책에 이른다. 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있는 의궤도 295종 529책이나 된다. 이 기록물들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기록들이 다룬 대상 중에는 안태 관련 의례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소중한 세계기록유산과 그 기록의 주체이자 본질인 조선의 장태문화와 태실이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인류가 보전해야할 세계유산으로서 그 가치가 충분하다. 세계유산(World Heritage)은 '모든 인류를 위해 보호해야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있다고 인정하는 유산'으로 정의한다. 장태 문화는 전 세계 어느 문명에서든 고루 발견할 수 있는 인류 보편의 문화이고, 한국의 태실은 생명의 상징 코드인 태를 갈무리하기 위해 조성한 문화유산임을 미뤄볼 때 국내 최대 규모이자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세종대왕자 태실의 세계유산 등재는 자연스럽다.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과 성주군이 간행한 학술서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과 세계의 장태문화'에서 정병호 경북대 교수는 '세종대왕자 태실은 한 곳에 군집 형태로 조성된 독보적 사례'라며 '세계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태실에서 출토된 유물과 안태 및 태실 관련 각종 의궤나 등록 등은 신뢰할만한 증거물로 유산의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무형유산센터 허권 사무총장도 지난 2016년 1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의 태실과 세계의 장태문화' 학술대회에서 "한국의 태실은 문화적 상징성을 넘어 그 구체적인 유산으로 전승돼 왔다"면서 "무형적 유산이 아닌 부동산 유산으로 그 구체성을 현저히 보여주며 전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유일성이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뒷받침한다"고 평가했다.
서종철 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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