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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대통령의 안경

최경철서울정경부장 겸 편집위원
최경철서울정경부장 겸 편집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6일, 구속·수감된 지 900일 만에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 서울 강남의 성모병원으로 들어서는 박 전 대통령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재임 중 안경을 전혀 쓰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은 구속·수감된 뒤 법정에 출두할 때 이따금 안경을 착용했고 병원에 입원한 이날도 안경을 썼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안경을 쓴 사람은 거의 없다. 짧은 기간 재임했던 윤보선·최규하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비교적 긴 임기를 가졌던 대통령들은 거의 모두가 안경을 쓰지 않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안경을 착용하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 안경을 쓰기도 했지만 원래 모습은 나안(裸眼)이었다.

안경 안 쓴 대통령 후보들이 대다수였기에 역대 대선 과정에서는 '안경의 저주'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안경을 착용했던 대선 후보들은 어김없이 패(敗)하는 경우가 많았던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국가 경영의 꿈을 키웠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대표적인 '안경의 저주'에 해당된다. 안경을 쓰지 않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결, 이른바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고배를 마신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도 그 징크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19대 대선에서 승리, 청와대로 들어온 문재인 대통령도 18대 대선에서는 안경을 쓰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졌다. '안경의 저주'에 한 번 휘말렸던 문 대통령이었지만 19대 대선에서는 안경 안 쓴 안철수 후보 등을 꺾고 무난히 승리, 안경 징크스를 깼다.

대통령의 안경 얘기를 꺼내놓은 것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시각 때문이다. 청와대에서 기자가 봐 온 문 대통령의 '인격과 품성'을 감안할 때 사모펀드 등 숱한 의혹에 휩싸인 조 장관은 문 대통령의 '눈에 들지 않는' 후보자가 분명하다. 지명 철회 의견이 응답자의 과반을 넘긴 조사 결과가 셀 수 없을 정도였는데도 문 대통령은 여기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의 NH농협은행 본점을 찾아 국내 소재·부품·장비산업에 투자하는 '필승코리아 펀드'에 가입하면서 금융상품 판매 직원이 주식·펀드 투자 경험을 묻자 "일체 없었습니다"라고 답했다. 평생 예·적금 외에 주식이나 펀드는 아예 쳐다보지를 않았던 것이다.

판매 직원이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 수준을 묻자 문 대통령은 '높은 수준'에 체크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비서실장을 역임하면서 숱하게 많은 투자 정보를 들었을 터. 변호사였으니 각종 사건 수임 과정에서 금융 지식도 쌓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금융상품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전 생애에 걸친 금융 장바구니에는 주식·펀드가 없었다. 이자가 미리 정해져 있는 예·적금과 달리 시시각각 변하는 수익률에 대해 '맹렬한 집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주식·펀드가 혹여 탐욕의 세상·천민자본주의의 세계로 자신을 오도할 수 있다는 경계심의 발동 때문이 아니었을까?

문 대통령은 이런 기준을 세우고 살아왔건만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 재직 때 사모펀드에 가입했고 가족 펀드를 만들었다는 의심도 받으면서 위선자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는 조국 장관에 대해서는 왜 이리도 관대한 것일까?

야당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묻고 있다. 대통령의 안경이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닌지, 지금 바로 고쳐 써야 되는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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