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창의도시답게 대구에는 예전부터 음악실이 많았다. 대한민국 제1호 제2호 고전음악감상실인 녹향음악실과 하이마트음악실을 시작으로 코리아음악실, 빅토리아음악실을 비롯한 팝음악실과 멋있는 DJ오빠들이 곡을 소개하던 음악카페까지, 동성로와 중앙로에 음악실이 즐비했다. 청년들이 자리를 꽉 채우던 팝 음악실은 사라졌지만, 2·28공원에서 3대째 이어온 고전음악실 하이마트와 1946년에 문을 열어 화가 이중섭을 비롯한 지역 예술가들의 쉼터가 되어주었던 녹향음악실은 지금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음을 내려놓고 쉬고 싶을 때 슬금슬금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아무런 약속 없이 찾아간 음악실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음악을 들으러 다니던 그때, 성악과에 다니는 친구를 따라 생전 처음으로 오페라를 본 것이 베르디의 '리골레토'였다. 오페라를 보고 와서 일주일 내내 '여자의 마음은'이란 곡을 흥얼거렸다.
문학관에서 후배를 만나고 슬그머니 들어간 녹향음악실에서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보았다. 마치 오페라를 보기 위해 찾아간 듯 영상에 쉽게 몰두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돌이켜 볼 추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의 약장수 둘카마라가 마을 사람들에게 가짜 약을 팔고 있었다. 그 약을 먹으면 주름이 활짝 펴지고, 아픈 사람도 낫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돌릴 수 있다고 허풍을 쳐대지만 엉터리 약장수가 판 것은 잘 익은 포도주에 불과하다. 대지주의 딸 아디나를 사랑하는 시골 청년 네모리노는 입대하는 조건으로 선금을 받아 사랑의 묘약을 산다. 그 약이 네모리노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사랑의 묘약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네모리노는 약의 효능을 믿으며 아디나의 사랑을 간절히 기다린다. 약의 효능 때문인지 사랑의 열정 때문인지, 네모리노가 마침내 아디나의 사랑을 얻는데 성공한다. 네모리노의 진솔한 사랑이 아디나의 마음에 가닿은 것을 플라시보 효과라고 해야 할까. 설탕물도 환자가 진짜 약이라고 믿는 순간 위안이 되며 생각지도 않은 효과를 나타난다고 하니.
네모리노가 벽에 기대어 사랑의 괴로움으로 가득 찬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부른다. 유튜브를 열어놓고 다 들어봐도 테너 롤란도 비야손을 능가하는 목소리가 없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에 한해서만은 그렇다. 도니제티는 1832년 35세에 '사랑의 묘약'을 작곡했다. 35세? 그 나이에 나는 일곱 살과 다섯 살 두 아이에게 롤라 타는 걸 가르치고 도시락 싸서 공원으로 데리고 다닐 때였다.
음악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성큼 다가온 가을이 실감난다. 가을은 머리보다 가슴과 귀가 더 궁금해지는 계절이다. 음악이든 새소리든, 물소리든 어디로든지 소리를 찾아가는 것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도 좋은 계절이다. 에너지는 긍정적인 힘과 심리적인 안정감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니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힘을 보충하는 것도 가을을 의미 있게 보내는 일이 될 것 같다. 장정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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