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는 세속의 번뇌를 떨치고 종교적인 초월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여승의 고뇌에 찬 열망의 몸짓을 심미적으로 그렸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애련한 정서는 오래전 개봉한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도 느낀 적이 있다.
주연 여배우 강수연이 영화 속에서 출가에 따른 실제 삭발 장면을 보여준 것이다. 당시만 해도 여배우가 연기를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프로 정신의 발현이었다. 비록 연기의 연장이라 해도 삭발은 결연함과 비장미가 감돌기 마련이다. 그래서인가 강수연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하여 욕망과 번뇌의 상징으로 여긴다. 따라서 출가 승려의 삭발은 단순히 머리카락을 자르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세속의 명리를 잊고 오직 수행에 정진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 삭발은 곧 출가 정신의 발로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삭발의 초발심을 잊지 않고 청정한 수행자의 삶을 이어가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삭발은 요식행위나 쇼로 전락한다.
동서양의 여러 신화 속에 등장하는 머리카락은 권위와 신분 그리고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삭발은 저항의 표시이자 항변의 수단이기도 하다. 스포츠인도 새로운 결기를 드러내기 위해 머리를 깎은 사례가 있다. LA 다저스 시절 박찬호는 삭발 투혼으로 슬럼프를 극복했다. 정치인의 삭발은 비교적 익숙하다. 그럴 때마다 평가 또한 엇갈렸다. 자칫 정치적인 쇼라는 비아냥이 뒤따르기 십상이다.
최근 조국 사태에 즈음한 야당 정치인들의 잇따른 삭발을 보는 국민의 시선이 예사롭지가 않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중진들의 릴레이 삭발이 정국 변화의 분수령을 이룰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이다. 관건은 국민의 공감과 호응이다. 진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떨어지는 머리카락과 함께 기득권도 내려놓아야 한다. 삭발을 구국의 결단으로 승화시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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