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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대구 북동 중학교와 고산 도서관

조두진 문화부장
조두진 문화부장

몇 해 전 경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본 풍경이다. 저학년 아이들 하교 무렵이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열 명쯤 되는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학교 안, 교사(校舍) 근처에 모여 자녀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엄마들을 보고 나서야 좀 전에 지나친 외국인 여성이 떠올랐다. 그녀는 우산을 받쳐 든 채 학교 정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아마 이 여성 역시 하교하는 자식을 기다리는 엄마였을 것이다.

매일신문은 10여 년 전부터 매년 '전국다문화가족 생활수기 공모전'을 열고 있다. 심사에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는데, '아이가 (엄마인) 나를 부끄러워해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한다' '선생님 말씀을 못 알아듣는다며 아이가 마구 화를 냈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남편이 때렸다'와 같은 사연을 수없이 읽었다. 학교 정문에서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던 경주의 그 엄마 역시 '아이가 부끄러워할까 봐' 학교 안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족 정책은 외국인의 한국화에 집중돼 있다. 그들은 한국에서 살기로 작정했으니 한국화가 필요하다.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우리 문화도 알아야 하고, 전통 음식도 만들 줄 알아야 하고, 관습도 익혀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능사는 아니다.

외국 출신 엄마를 아무리 한국화하더라도 그들은 한국인 엄마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 능력이 떨어지니 아직 어린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못마땅해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아버지와 조부모가 가하는 비난은 어린아이로 하여금 엄마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할 것이다. 자신이 아는 사회라고는 가정과 학교밖에 없는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학대받고 무시당하는 엄마를 존경할 가능성은 낮다.

엄마를 부끄러워하는 아이가 학업에서 성취를 이룩하고, 반듯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아직 어릴 때는 엄마에게 가하는, 결국은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과 모멸을 어쩔 수 없이 참겠지만, 청년이 되면 그 분노는 가정과 사회로 터져 나올 것이다.

'한국인 양성'에만 집중돼 있는 다문화정책을 '국제인 양성'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한국어에 약한 엄마가 사실은 '베트남어에 능하다'는 것을, 한국 관습을 모르는 엄마가 모국 전통에 박식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엄마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타박할 게 아니라 아내의 모국어를 한마디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자식을 반듯하게 키우고, 아내에게 존중감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길이다.

대구 북동중학교(달성군 논공읍)의 국기 게양대에는 태극기를 포함해 7개국의 국기가 펄럭인다. 덕분에 이 학교의 다문화가정 아이들, 외국인 아이들은 태극기를 향해, 그리고 어머니 혹은 아버지 나라의 국기를 향해 경례하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

대구 수성구립 고산도서관(수성구 달구벌대로 650길)에서는 다문화가정 엄마가 강사로 나서 모국의 전통 놀이를 한국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가르친다. 어눌한 줄 알았던 아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줄 알았던 엄마가 여러 사람을 가르치고, 이끄는 모습을 보며 남편들과 자식들은 박수를 치고 감동한다. 그런 아이는 엄마를 자랑스러워 한다. 더 많은 북동중학교, 더 많은 고산도서관이 생겨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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