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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고결한 아름다움

이정호 국악작곡가

이정호 국악작곡가
이정호 국악작곡가

나의 곡 정가를 위한 '별한'이라는 곡이 있다. 남녀창 정가를 창작곡으로 만들었다. '별한'이라는 곡 제목은 조선시대 뛰어난 예인이던 기생 매창의 시조에서 가져온 것으로, 매창의 유명한 시 '이화우 흩 뿌릴제'를 비롯하여, '규원(閨怨)', '별한(別恨)', 그리고 그녀의 정인이었던 촌은(村隱) 유희경의 '도중억계랑(途中憶癸娘)' 이렇게 4개의 시조를 가사로 하여 곡을 썼다.

매창은 황진이와 많이 비견되며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을 포함하여 그 시대 여러 선비들과 교류를 나눌 만큼 뛰어난 글재주와 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었고, 유희경 또한 신분은 천민이었지만 뛰어난 학식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 두 사람이 어느 날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졌는데 이는 곧 서로에 대한 문학적 깊이와 시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리라 생각된다. 시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시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며 마음의 정이 깊어갔다. 그러나 이내 긴 시간동안 두 사람은 기약 없이 떨어져 지내게 되었고, 그때도 서로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시로 적어 많이 주고받았는데, 그중 위의 4개의 시조를 엮어 만든 곡이 정가를 위한 '별한'이다.

'임 떠난 내일 밤이야 짧고 짧아지더라도(明宵雖短短)/ 임 모신 오늘 밤만은 길고 길어지소서(今夜願長長)/ 닭 울음소리 들리고 날은 곧 새려는데(鷄聲聽欲曉)/ 두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네(雙瞼淚千行)'- 매창 '별한(別恨)'

짧은 만남을 통해 서로 마음으로써 사랑을 나누었지만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오니 그 마음을 아쉬워하며 쓴 매창의 시이다.

'고운 임 이별한 후 구름이 막혀(一別佳人隔楚雲)/ 나그네 마음 어지럽다오(客中心緖轉紛紛)/ 청조도 날아 오지 않아 소식 끊기니(靑鳥不來音信斷)/ 벽오동 찬 비 내리는 소리 차마 듣지 못하겠네(碧梧凉雨不堪聞)'- 유희경 '도중억계랑(途中憶癸娘)'

길에서 문득 계랑을 생각하다는 뜻의 도중억계랑은 길을 가다가도 그녀 생각이 나고 늘 그녀를 그리워하는 유희경의 마음이 잘 담겨있다. 여기서 계랑은 매창의 다른 이름으로 유희경은 매창을 늘 계랑이라 불렀던 듯하다. 그의 호를 딴 시문집 '촌은집'에는 매창에게 전해준 시 중 7수를 소개하였는데 모두 계랑이라는 제목이 들어가 있다.

이 시는 '별한'이라는 곡에서 남창가곡으로 표현하였는데, 지난 몇 달간의 칼럼을 통해 여러 번 언급한 정가 여창가곡은 부드럽고 순백의 미가 있다면, 남창가곡은 꿋꿋하고 기백이 넘치는 소리가 일품이다. 노래 창법적으로도 성악가, 대중가수 등과 많이 다르고 여창 정가와도 차이를 보이는 색다른 음색을 느낄 수 있으니 나처럼 그 매력에 한번 빠지기 시작한다면 헤어 나오기 힘들 듯하다. 고결한 우리 소리 정가,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이정호 국악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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