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죽삐죽 솟은 가시에 동그랗게 움츠린 통통한 몸. 얼핏 보면 밤나무 비탈 아래 나뒹구는 밤송이 같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분홍색 가냘픈 다리가 쑥 하고 튀어나온다. "까칠하지만 속내는 누구보다도 부드럽다" 수성구에 사는 황선영 씨는 고슴도치 두 마리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주인 앞에선 몸에 돋친 가시를 눕혀 무장해제하고, 심지어 자신의 부드러운 배를 아낌없이 내어 주는 이 녀석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못난이의 대명사'요. 오만과 독선을 비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불명예스런 별명의 주인공이었다.


◆털 안날리고 냄새 안 나는 반려동물
누구나 한 번쯤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눈물을 흘린 유년시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조금 별난(?) 아이였다면 분양숍 앞에서 드러눕기까지 시전 했을 터. 복슬복슬한 털에 씰룩씰룩 움직이는 궁둥이는 어린이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하지만 흩날리는 털과 왕왕 짖는 소음에 데려오기가 선뜻 망설여지기도 하다. 그때 물고기나 식물은 어떻겠냐는 부모님의 압박이 훅 들어온다. 그렇다면 강아지와 식물 그 중간쯤의 절충선이 필요하다.
"동물 키우는 걸 반대하시던 부모님께서 케이지 안에서 키울 수 있을 정도의 크기라면 (반려동물을 데려와도) 괜찮다고 하셨다" 강아지라면 결사반대하시던 부모님은 선영씨의 동물 사랑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털도 안 날리고 시끄럽지도 않아야 하며 병원비도 많이 안 들어가야 한다는 옵션이 덧붙었다. 그런 동물이 있을까? 그냥 키우지 말라는 건 아닐까? 선영씨는 고민 끝에 고슴도치를 전문적으로 교배하는 곳에서 도리와 나리를 데려왔다.
고슴도치는 다른 반려동물보다 훨씬 쉽게 돌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선 소음을 만들지 않아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기껏해야 기분 안 좋을 때 내는 '쉭쉭' 거리는 소리가 전부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목욕하지 않으면 냄새가 나는 강아지, 고양이와는 달리 분비선이 없기 때문에 사육공간만 청결하게 유지하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 매년 정기검진받기를 추천하지만, 정기적인 접종이나 백신이 필요치 않아 유지 관리비가 적은 반려동물로 간주된다. 하지만 동시에 활동 반경이 작아 과체중이나 비만이 되기도 쉽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케이지 안에 쳇바퀴를 넣어 고슴도치가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가끔 케이지 밖으로 꺼내 운동을 시켜야 한다.


◆까칠하고 예민한 고슴도치 길들이기
고양이에게 집사가 있다면 고슴도치들에겐 무수리가 있다. 까칠하고 예민한 고슴도치를 어르고 달래는 반려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인기척이 느껴지면 '쉭쉭' 대며 가시를 세우고, 근처라도 갈라치면 통통대며 거부 의사를 드러내는 이 상전을 모시려면 반려인들은 무수리를 자처할 수밖에 없다. 그런 무수리가 갖춰야 할 덕목이 하나 있으니. 바로 인내심이다. 제 자식과 친해지려면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고슴도치의 성격에 따라서 며칠, 아니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려인이 끊임없는 믿음을 준다면 한없이 진국인 녀석 또한 고슴도치다.
"처음엔 수도 없이 물리고 찔렸다. 하도 찔리다 보니 이 녀석과 친해질 수는 있으려나 걱정이 들더라" 선영 씨는 도리, 나리와 친해지기 위해 첫날 부터 초강수를 뒀다. 만나자마자 합방에 나선 것. '포치'라고 아기가 잠자는 공간을 통째로 침실로 들고 왔다. 함께 담요를 덮고 사람의 냄새를 익히게 하기 위함이다. 다소 화끈(?) 한 이 방법은 실제 고슴도치를 키우는 반려인들이 애용하는 적응법이다. 체취가 많이 묻은 양말이나 티셔츠를 도치 집에 넣어두기를 몇 번. 도치 집이 세탁기냐며 옷가지를 치우던 부모님의 핀잔을 이겨내기를 몇 번. 백 번 두들겨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했던가. 가까이 다가가면 은둔처에 쏙 숨어버리는 녀석은 그렇게 선영 씨 곁으로 왔다. 지금은 손안에서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는 핸들링도 터득해, 날이 안 선 부드러운 가시를 만질 수 있는 호사까지 누린다.
고슴도치는 시각보다 후각으로 먼저 인지하는 동물이다. 이는 주인을 눈보다 냄새로 먼저 알아본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냄새를 익히기 전까지는 가시를 세우거나 이빨로 깨물 수 있다. 하지만 친해졌다고 방심은 금물이다. 장시간 고슴도치와 놀아주지 않거나 핸들링을 하지 않게 되면 다시 원래대로 사람 손을 무서워하게 된다. 하루에 몇 분씩 핸들링을 하며 애정을 쏟으며 '나는 네게 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며 너를 위하고 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된다. 한번 고슴도치에게 해를 입히거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들면 다시 돌리는 데에 무척 애먹게 된다.


◆표정과 성격, 사람 뺨치게 다양해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는 속담이 있다. 털이 바늘처럼 꼿꼿한 고슴도치도 제 새끼 털이 부드럽다고 옹호한다 함이니 부모 눈에 자기 자식은 다 잘나 보인다는 말이다. 선영씨가 사육 관련 정보를 얻는다는 온라인 동호회를 둘러보다 보면 자식 사랑을 표출하는 고슴도치 부모들이 속출한다. "우리 고돌이 건치 자랑합니다", "톡 튀어나온 궁둥이 좀 봐요" "가느다라한 다리 각선미 끝내주죠?" 심지어 잘 싸놓은 대변 자랑까지 나섰으니 가히 지독스런 고슴도치 사랑이다.
선영씨도 제 자식 사랑 탓(?)에 주변인들의 핀잔을 수시로 듣는다. "우리 도리,나리 웃는 거 예쁘지 않냐"고 자랑이라도 할라치면 "우리가 볼 땐 똑같은 표정인데 뭘 그리 유난이냐"는 타박이 돌아온다. 이리 보고 저리보다 보면 남들은 보지 못하는 매력이 부모 맘엔 흐르다 못해 넘쳐흐른다. 선영씨는 하루에도 열두 번 도치와 나리의 다양한 표정을 읽는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고슴도치와 선영씨만의 세계인 것이다.
평소 도리와 나리는 예민한 고슴도치다. 매일 화내고 찌푸려서 미간엔 항상 주름이 져있을 정도. 고슴도치는 기분이 안 좋거나 위협을 당한다 생각하면 가시를 세우는데 그러기 위해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이런 둘도 행복한 표정을 선보일 때가 있으니 바로 밥 먹는 시간이다. 곤충이나 사과, 베리류 같은 특식이 배식될 때면 동그랗던 눈은 점점 커져 튀어나올 듯 똥그래진다. 그러고선 기분이 좋은지 휘파람 소리까지 낸다. "(고슴도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격도 다르고, 표정도 다양하다. 처음엔 강아지 대신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강아지 저리 가라 한 고슴도치의 매력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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